자살에 대한 교회사의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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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에 대한 교회사의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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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6.17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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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호프와 함께하는 ‘생명목회이야기’ (12)

자살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에 따라서 563년 브라가 공의회와 580년 오세르 성직자 회의에서는 모든 자살자를 처벌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중세 스콜라 철학의 대가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대표작인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에서 자살에 반대하는 세 가지 이유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첫째, 그는 만물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자살은 이러한 자연적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공동체에 속한 일원으로서 자살은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공동체에도 손해를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 생명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부여해 주신 선물이기에 인간의 마음대로 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생과 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아퀴나스의 견해는 공동체를 강조하는 것에 있어서 그 특별함이 있다.

이러한 생각들은 중세를 이어왔다. 1917년 구 교회법전까지도 이러한 논리에 따라서 ‘데리베라토 콘실리오(Deliberato consilio)’, 즉 자기 마음대로 생명을 해치는 권한을 행사한 자로부터 교회에서 행해주는 장례의 혜택을 박탈하였다. 이로써 자살한 자들은 죽어서도 보통 사람들처럼 교회 묘소에 묻힐 수가 없었다. 이들은 살아 있는 자들의 공동체뿐만 아니라 죽은 자들의 공동체로부터도 떨어져 묻혀야 했다. 더군다나 자살은 이러한 종교적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유일하게 법과 권한을 행사하고 그 법의 권위를 지키고 공소를 유지해야 할 군주의 권위를 침해하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이것은 인간에 대한 불경죄, 즉 형법상의 범죄로도 간주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죽은 이후에도 ‘시체에 대한 재판’, ‘공개적인 시체 처벌’, ‘부관’(部棺, 무덤에 묻힌 시체를 꺼내어 형을 가하는 것), ‘자살한 자의 재산의 몰수’ 같은 형벌이 가해졌다.

시체에 대한 재판이나 형벌은 마을 공터 혹은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 어떤 지역에서는 시체를 나무에 매달거나 물에 빠뜨리기도 했고, 파리와 보르도에서는 시체가 보이도록 그물망 같은 것에 사체의 얼굴이 땅에 닿도록 거꾸로 하여 울퉁불퉁한 자갈길이나 진흙탕 길을 끌고 갔으며, 릴르에서는 시체를 쇠스랑에 찔러서 골목을 질질 끌고 다녔다고 한다. 또 어떤 지역에서는 여자들의 시체를 불에 태우기도 했으며, 독일의 어느 지방에서는 시체를 소가죽에 싸서 나무에 매달아 썩게 내버려두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교회는 전통적으로 자살에 대해서 심각한 수준의 형벌로 대응해 왔다. 이것은 범죄로서의 자살에 대한 징계와 함께 현재의 자살이 영원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살 앞에 사람들로 하여금 심각하게 대면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자살에 대한 이러한 태도들이 교리적으로 확정된 형태는 아니다. 물론 가톨릭에서는 이와 유사한 형태의 가르침이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담겨 있다. 그러나 거기에도 자살을 구원의 문제와 연결짖지는 않았다. 단지 왜 자살을 하면 안 되는 지에 대해서 중세의 아우구스티누스나 아퀴나스의 논리에 의거하여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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