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그보다 더 진한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맺어주신 막내딸 은지와의 인연으로 위탁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우리 사이에 별처럼 수많은 이야기가 쌓이면서 진정한 가족이 되어간다는 것을…. 가족의 시작은 혈연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9년 전 젖먹이 아기였던 은지를 만나 특별한 동거를 이어오고 있는 ‘위탁부모’ 배은희 작가의 고백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가정위탁제도는 입양보다도 덜 알려진 생소한 개념이다. 그래서 한 생명을 위탁받아 길러내는 모든 순간에는 오해와 편견에 맞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천사를 만난 덕분에 진정한 사랑을 배웠다는 배 작가. 하나님이 보내주신 보물 은지와 한 가족이 되기까지 아프고도 행복했던 여정은 국내 최초로 위탁가정에 관한 에세이로 출간돼 묵직한 울림을 선사하기도 했다. 평범한 가정에서 피어난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위탁가정은
모세의 갈대상자
2015년 3월 2일. 가정위탁제도를 통해 은지를 새로운 가족으로 맞이한 날을 배 작가는 평생 잊지 못한다. 그는 당시를 “우리 집 현관으로 사랑이 들어온 날”이라고 애정어리게 표현했다.
가정위탁제도는 여러 이유로 아동이 친가정에서 자랄 수 없는 경우 다른 가정이 일정 기간 대리 양육하는 아동복지 서비스다. 원가정이 회복되면, 아이도 돌려보내야 한다. 현재 전국에 1만 2천여명의 위기아동이 위탁가정을 필요로 하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실정이다.
배 작가가 위탁부모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우연히 신문 광고를 보면서다.
“‘사랑의 위탁부모가 되어주세요’라는 문구를 보자마자 하나님께서 ‘배은희!’라고 출석을 부르시는 것 같았어요. 저도 당장 ‘네!’라고 답하고 싶었죠. 지금 돌아보니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그길로 제주가정위탁지원센터에 연락했다. 이후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교육을 받고 신청서를 작성한 뒤 한 달쯤 지났을까. 일곱 살 남자아이를 맡아달란 연락이 왔다. 하지만 아직 준비가 덜 됐다고 판단한 배 작가는 미안함을 억누르며 거절의 뜻을 전했다.
“그날 밤 온 몸의 뼈마디가 쑤시고 열이 펄펄 끓었어요. 그래서 다음 번에는 어떤 아이를 의뢰받더라도 무조건 수락하기로 남편과 약속했죠.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은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당시 11개월 무렵의 은지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지적장애 친모와 미혼모시설에서 살고 있던 은지는 급히 맡아줄 곳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잠깐의 두려움이 엄습했다. 과연 은지를 잘 키울 수 있을지, 더 성숙한 부모에게 갈 기회를 빼앗는 건 아닐지 만감이 교차했다.
한 사람의 인생 아니 한 가정의 운명을 책임질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배 작가와 남편 그리고 아들딸은 일주일간 기도로 뜻을 구했다. 결과는 대환영이었다. 기쁨으로 은지를 서로 돌보겠다는 두 자녀를 보면서 “이토록 호응해주는 가족과 함께라면 가능하겠다”는 힘을 얻었다.
그러나 어린 피붙이와 생이별을 해야 하는 은지의 친모야말로 가슴이 무너져내렸을 터. 배 작가는 은지를 처음 만나던 날 은지 친엄마의 모습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는 “생모에게 ‘은지를 한 번 안아봐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저를 경계하며 떨리는 손으로 은지를 안고 옆으로 돌아앉았다. 그런데 그 행동이 너무 이해됐다”며 “이후 은지와 헤어지는 날 자신이 만든 예쁜 실반지를 은지에게 채워주면서 ‘은지야 엄마 잊지마’라고 말하고 우는데 얼마나 가슴이 찢어졌을까 싶었다. 이 소중한 아이를 정말 잘 키우자고 다짐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가슴에 품으면서 무거운 사명감을 느꼈다”며 “가정위탁제도는 성경 속 모세의 ‘갈대상자’ 같다. 아이를 양육하기 힘들고 위험한 환경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 보호하신 것이다. 한 생명을 신앙 안에서 잘 기르는 것도 ‘선교’라고 여겼다”고 소신을 전했다.
서로를 위탁하며
사랑을 배워나가다
열정과 달리 마흔다섯의 나이에 다시 시작한 육아는 무척 고됐다. 이미 두 자녀를 출산한 경험이 있지만 중년에 뛰어든 육아는 보통 매운맛이 아니었다. 주위에선 사서 고생을 한다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배 작가의 영육은 조금씩 지쳐갔다.
“하루는 교회 자모실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설교는 잘 안 들리고 똥 기저귀나 돌돌 마는 현실에 시험이 드는 거에요. 바로 그때 하나님이 ‘은희야, 이게 예배야’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예배당에서 거룩하게 손 들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만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닮은 이 아이를 잘 입히고 먹이고 재우는 일도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었죠.”
장애가 유전될 수 있다는 사실에 배 작가는 은지의 머리 위에 수시로 손을 얹고 ‘지혜와 지식이 날마다 새롭게 이르게 해달라’고 중보했다. 그의 간절한 바람과 정성스런 돌봄으로 무럭무럭 자란 은지는 어느덧 몸도 마음도 건강한 11살 어린이가 되었다.
“은지가 걸음마를 떼고 옹알이를 하며 한 단계씩 성장할 때마다 저는 즐거운 손뼉을 쳤습니다. 낯도 심하게 가리던 아이가 이제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어른들마다 큰 소리로 인사하게 된 것도 학교에서 번쩍 손을 들고 발표하게 된 것도 모두 ‘사랑의 힘’ 덕분이라고 믿어요.”
제일 큰 보람은 은지를 키우면서 온 가족이 함께 ‘성장’한 것이다. 특히 갓난아기 은지를 돌보며 힘들다고 투정 부리던 둘째 딸 어진이는 어느새 은지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언니가 됐다. 동시에 “엄마도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키웠느냐”고 말 할 정도로 철이 든 듬직한 딸이다.
가족에 찾아온 긍정적 변화를 두고, 배 작가는 “은지가 우리 온 가족을 키웠다”며, 사랑이라는 막강한 힘을 배우는 곳이 바로 위탁가정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저는 성품이 좋은 사람도 아닌데 위탁부모가 됐어요. 그런데 은지와 함께 온 가족이 지지고 볶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면서 조금씩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돌아보면 이런 성장통은 위탁가족이 되는데 꼭 필요한 진통이었던 것 같아요. 은지를 키우면서 사랑은 누군가의 삶을 구하기도 하고, 나 자신을 바꾸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편견과 오해를 딛고
용기와 희망을 전하다
“은지는 엄마도 두 명 아빠도 두 명이니까 두 배로 사랑받고 행복하면 좋겠어.” 배 작가가 은지에게 늘 들려주는 축복의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정위탁제도는 5년마다 갱신되는데, 원가정이 회복되면 언젠가 돌아가야 한다.
배 작가는 “위탁부모가 되기 전엔 그저 친부모와 함께 살 수 없는 아이를 우리 집에서 돌봐 주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천륜을 이어주는 역할이라 생각한다”며 “은지가 친모를 궁금해하거나 보고싶어하면 언제든 알려주고 만나게 해주려 노력한다. 물론 이 일은 늘 아프다. 하지만 은지의 성장 시기에 따라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 해줄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감사하게도 은지는 자신에 대해 ‘버려진 아이’가 아닌 ‘지켜진 아이’라는 건강한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며 “위탁부모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이별’이다. 나 역시 상상만 해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지만, 내가 배 아파 낳은 자식도 언젠가는 독립할 날이 온다. 그런 의미에서 은지와 헤어지게 되더라도 우리는 영원한 가족”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그는 2021년 국내 최초로 위탁가정에 관한 에세이 천사를 만나고 사랑을 배웠습니다를 펴내고 은지와의 ‘색다른 동거’ 이야기를 공개해 감동을 자아내며 호평을 얻었다. 중앙일보에 2년간 연재한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 글을 모은 책에는 은지가 처음으로 이가 빠진 날, 낳아준 엄마를 만나러 간 날 등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일상이 따뜻하게 담겼다.
무엇보다 배 작가는 그동안 위탁부모로서 느낀 고충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남의 자식을 어떻게 키우느냐’는 따가운 시선부터 ‘보조금은 얼마나 받느냐’ 등 다소 무례하면서도 황당한 질문들에 마음고생도 적잖이 했지만, 결국 이마저도 ‘편견’과 ‘오해’에 기인했음을 알리며 가정위탁제도에 대한 인식 개선에 팔을 걷어붙였다.
또, 법적으로 ‘동거인’ 자격에 불과해 은행 업무나 핸드폰 개통 등 사소한 일에서도 불편한 제약을 받는 현실을 꼬집으며 위탁가정이 겪는 고충을 알리는 일에도 구슬땀을 흘렸다. 그는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위탁가정들이 상처를 받고 꽁꽁 숨는 일이 없길 바랐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가족이 되는 세 가지 방법을 결혼, 출산, 입양이라고 설명하는데요. 저는 여기에 ‘위탁가정’도 추가하고 싶어요. 우리 가족의 작은 날갯짓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세상에 위탁가족이 늘어나고 그 속에서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