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묵상, 그리고 절망의 남성을 살린 여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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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묵상, 그리고 절망의 남성을 살린 여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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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9.23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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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호프와 함께하는 ‘생명목회이야기’ (72)

시인 고은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라고 노래했다. 그 시에 김민기가 곡조를 붙여 불렀는데, 참 애잔한 느낌을 주는 노래이다. 이 시처럼 가을에 대한 노래에는 고독이 담겨 있다. 가을은 풍요로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에 고독을 남기는 것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이 그렇게 느끼게도 하고, 높은 하늘 앞에 서면 왠지 모르게 나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이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 스쳐가는 바람도, 심지어 커피 향까지도 고독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나도 모르게 커피를 그렇게 좋아했던 다형(茶兄) 김현승 시인의 이름을 떠올리는가 보다.

시인 김현승에 대해서는 아쉬운 추억이 있다. 정신적 방황이 극심하던 1976년 봄, 시인이 교수로 있던 대학에 입학하여 평소 존경하던 분을 만나겠다 싶었는데, 바로 전 해인 1975년 4월 학교 채플에서 말씀을 전하시다가 쓰러져 만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시인의 아버지는 전라남도 광주에 있는 작은 교회의 목회자였다. 그런 까닭에 시인은 어려서부터 종교적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자연스럽게 내면의 삶에 침잠하는 버릇이 생겨났다. 마치 주어진 숙명처럼 자신의 내면을 깊숙하게 살피는 것에 익숙해졌고, 그것이 그를 시인이 되게 했던 것 같다.

시인에게도 남다른 시련이 있었다. 어린 딸이 먼저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그 때 시인은 견딜 수 없는 괴로움에 하나님을 원망하였다. 그 원망하는 마음이 너무나 커서 하나님을 멀리 하기도 했었다. 아니, 시인의 표현대로 하나님을 떠났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더욱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했고, 그가 토해내는 시는 고독을 노래했다. 그래서 그의 시집 제목을 보면 ‘고독’을 넘어서서 ‘절대 고독’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 고독에는 ‘작은 옥토에 떨어지는 눈물’이 있었다. 그 눈물은 어린 딸을 잃은 아비의 통한의 눈물이요, 올곧은 삶을 살아가려는 자의 시대의 눈물이었다.

고독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하지만 고독하다고 말할 때와 외롭다고 말할 때가 좀 다른 느낌이다. 외로움은 말 그대로 외로움, 즉 주변에 아무도 없이 나 혼자라는 느낌에서 오는 불편한 감정이라고 생각된다. 반면에 고독은 내면의 더 깊은 곳으로 향하는 마음에서 느껴오는 정서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고독은 영성과 관련이 있다. 마치 사막 한 가운데서 절대 고독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 그러한 고독을 경험한 자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였다. 키에르케고르의 표현처럼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는 경험이다. 그러한 경험은 마치 자신의 실존을 직시하면서 7만 길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절망의 순간이며,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가을은 그래서 독서의 계절만이 아니라 영성의 계절이기도 하다. 마치 문지방을 넘는 것처럼, 절대 고독을 넘어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계절이며, 영혼을 살찌우는 계절이다.

시인은 절대 고독을 경험한 후에 다시 하나님께 돌아왔다. 그리고 기도를 담아 노래하였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게 하시고....” 그것은 마치 영혼이 진토 속에서 뒹구는 것 같은 슬픔 가운데에서도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시 119:25)라며 오직 생명의 하나님만을 붙잡는 시편 기자의 울부짖음이었고, ‘자식 잃고 자살기도 중년 끌어안고 위로한 여순경’에 대한 이야기(2015. 9. 18. 부산일보)는 그 울부짖음을 향한 하나님의 응답이었으며, 고독과 절망을 넘어선 생명과 희망의 빛이었다.

노용찬 목사(LifeHope기독교자살예방센터. 빛고을나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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