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부추기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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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부추기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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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7.2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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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호프와 함께하는 ‘생명목회이야기’ (64)

지난 2015년 7월 8일에 한 인터넷 신문에는 황당한 기사가 실렸다. 중국에서 일어난 일인데, 중국 선양의 한 아파트에서 어떤 여성이 창문 난간에 앉아서 투신자살을 기도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주민들은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을 불러 구경을 하다가 시간을 좀 오래 끌자 “빨리 뛰어내려”, “기다리기 지겹다”라며 투신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그 여성은 잠시 후 실제로 10층에서 뛰어내려 현장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자살을 하려는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자살을 막겠다는 생각은 좋지만, 섣부르게 대했다가는 오히려 일을 그르치기 쉽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 태국에서 작은 난간에 서서 자살을 하겠다고 시위하던 어떤 여성을 경찰관이 순간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잡으려고 다가섰다가 여성이 피하면서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추락해 숨진 사건이 있었다. 사실 그때 정황을 보면 그 여인은 정말 죽겠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정말 아쉬운 순간이었다.

생명의 소중함을 정말 뼈저리게 느낀다면 위기에 처한 생명을 대하는 태도 역시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는 알게 모르게 죽음을 부추기는 세력들이 있다. 얼마 전 미국에서 10대 청소년이 차를 훔쳐 무면허 운전을 하다가 집에 충돌하여 사고가 나서 차에 불이 붙었는데,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 구해주기는커녕 동영상을 찍느라고 정신이 없었다는 기사가 났었다.


그 사람은 나중에 변명하기를 ‘십대들에게 교통사고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서 동영상을 찍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기사를 언론사에 팔아먹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건 현장을 동영상으로 찍어 언론사에 파는 것을 소재로 한 영화가 상영되기도 했었다는 것을 보면 그러한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가 났을 때, 경찰 무전신호를 가로채서 현장에 누가 먼저 도착하느냐를 두고 경쟁을 벌이는 견인차 운전자들의 이야기가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위기에 빠진 생명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구경거리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 돈벌이나 혹은 그러한 흥정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 특종 기사의 소재가 되어서도 안 되며, 그것을 대가로 돈을 벌려는 직업적 수단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도 종교인들이나 혹은 사회단체가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호재로 사용되어서도 안 된다. 이미 세상은 종교나 ‘선한 행위’를 상품으로 내세운 사람들이나 집단들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은 인류 역사상 어느 때도 누려보지 못했던 물질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치라는 단어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소비가 절대적인 미덕이 되었다. 생명조차도 경제적 가치로 평가하는 시대의 한복판에 있는 것이다. 윤리와 도덕, 혹은 순결과 정절과 같은 말들은 이미 진부한 주제가 되어버렸고, 성(性)은 더 이상 생명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쾌락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되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러한 사회 현장 속에서 분명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사회가 지나치게 사치스러워지고, 윤리와 도덕적으로 타락한 세대, 그리고 자신들의 욕망과 물질적 유익과 쾌락을 위해 죽음을 부추기던 세대는 반드시 멸망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류 역사를 성찰하며 배우게 되는 교훈이다. 죽음을 부추기는 사회는 결코 오래 갈 수 없다.

노용찬 목사(라이프호프기독교자살예방센터공동대표. 빛고을나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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