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이 SNS에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근로자들의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호소하는 동영상을 올렸다. 내용을 들어보니 꽤 설득력이 있다. 근로자의 최저임금에 관한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큰 이슈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본 것 같다.
우리나라가 겉보기에는 잘 사는 나라처럼 되어 있지만, 여전히 사회 곳곳에는 분쟁의 불씨들이 남아 있다. 가진 자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려고 하고, 없는 자는 생존을 위해 그것을 요구하게 된다. 게다가 내년은 총선이 있는 해여서 정치적으로도 복잡하다. 이러는 와중에 등장하는 신조어들이 있다. ‘헬조선’,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 등과 같은 말들이다. 이 신조어들은 자녀세대들이 처한 삶의 상황을 함축적으로 나타내준다. 그리고 청년 자살률이 왜 높은가를 반영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젊은이들의 방황과 자살의 문제를 무조건 그 세대의 정서적 특성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혹 그렇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사회와 가정적인 요인이 함께 영향을 주고 있다는 개연성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만일 그러한 요인들이 있다면, 우리 가정과 사회는 그것을 제거해 나가려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왜 방황하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로,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방황할 수 있다. 이것은 삶의 의미의 문제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의미 있게 삶을 살아가는 기성세대를 통해서 배워야 한다. 그리고 배운 대로 살아가려는 노력에 대해서 격려 받아야 한다. 가정과 사회는 그들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주어야 하고 투자해 주어야 한다.
둘째로, 젊은이들이 삶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하더라도 그 배운 것과 삶의 현장이 다를 때, 그들이 보고 경험하는 사회의 모습이 다를 때 방황하게 된다. 젊은이들의 눈에 보이는 기성세대의 모순된 삶의 모습은 충격이 될 수 있다. 그것은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으로 치닫게 되고, 심각한 괴리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기에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인생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완벽하지는 못할지라도 그러한 노력이라도 할 때에 젊은이들은 신뢰를 가지고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나갈 용기를 얻게 된다.
셋째로, 더욱 심각한 방황은 배운 것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삶을 전개해 나갈 기회와 장(場)을 찾지 못할 때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경우에는 불신의 단계를 넘어서서 자기 파괴적인 행위와 사회에 대한 적대행위로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럴 경우 젊은이들은 존립의 바탕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 줄 뿐만이 아니라, 그 배운 것을 활용하여 새로운 삶을 전개시켜 나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개성과 방식대로 창조적인 미래의 삶을 추구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가정과 사회에서 선진(先進)들이 후진(後進)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와 장(場)을 만들어주는 것과 젊은이들에 대해 베푸는 아량과 관용은 사회를 밝게 할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미래를 밝게 해 주는 것이다.
노용찬 목사(라이프호프기독교자살예방센터. 빛고을나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