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고난, 그 역설과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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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고난, 그 역설과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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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0.0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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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호프와 함께하는 ‘생명목회이야기’ (73)

행복하게 살던 욥에게 갑자기 무서운 재난과 고통이 닥쳐왔다. 아들과 딸, 그리고 재산을 한순간에 잃게 되었던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욥을 찾아 온 세 친구는, 욥을 위로한다면서 그가 겪게 된 고난의 원인을 알게 하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감추어 놓은 은밀한 죄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가 하여 그 죄를 털어놓으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곁에 있는 아내의 태도는 더욱 기가 막혔다. 욥에게 피부병이 번져 재 위에 앉아 기왓장으로 그 짓무른 자리를 긁어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순간에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는 독한 말을 퍼붓기까지 했다. 그만큼 욥이 겪는 고난은 혹독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고난을 이해하는 데에는 네 가지 입장이 있다. 첫째는, 우리의 죄나 허물이나 실수 때문에 고난이 온다고 보는 입장이다(Sin). 둘째는, 시험 혹은 훈련이나 단련으로 보려는 입장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시키고 단련시키기 위해서 허락하신다는 입장이다(test, training). 세 번째 입장은, 사탄의 시험과 유혹과 같은 악의 시험 때문이라고 보는 입장이다(temptation). 마지막 네 번째는, 고난의 이유나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mystery).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환원주의적 입장은 자연스럽게 인과응보사상을 낳는다. 그러나 인간이 겪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원인을 명확하게 밝혀내기는 쉽지 않다. 여기서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것에서 원인보다는 그 의미와 교훈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욥기 32~37장은 네 번째 친구 엘리후가 의인에게도 고난이 있으며 하나님은 그럴 만한 이유를 갖고 있다고 설명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 역시 38~42장으로 넘어가면 반론을 만난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무한하신 창조의 능력을 말씀하시며,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가진 친구를 책망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이 다 알 수 없고, 다만 하나님을 경외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고난에 대해서 너무 단순한 이해를 하고 있다. 그래서 쉽게 원인을 따지고, 단정 짓고, 쉽게 실망하고 절망하며, 자신과 남을 정죄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인생은 단순하지 않다.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고, 그만큼 심오하다.

시편 119편 65~72절까지의 말씀은 고난에 대한 직접적인 교훈이다. 시인은 고난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주님의 말씀을 지키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아마도 그는 수많은 고난을 당하면서 오히려 하나님께서 참으로 신실하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다. 그러한 고백이 65절에 담겨 있다. “주님,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인 나를 잘 대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만이 결국 고난을 당할 때나 혹은 악하고 오만한 자들이 그의 명예를 훼손하고 괴롭힐 때에나 또는 세상의 금은과 같은 부귀영화가 그를 유혹할 때에도 중심과 분별력을 잃지 않도록 해 준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간절하게 기도한다. “내가 주님의 계명을 따르니, 올바른 통찰력과 지식을 주십시오.” 결론적인 시인의 고백은 다음과 같다. “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는 오히려 유익이 되었습니다. 그 고난 때문에, 나는 주님의 율례를 배웠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친히 일러주신 그 법이, 천만 금은보다 더 귀합니다”(71, 72절).

추석 명절에 신문지상에 실린 수많은 명절증후군의 이야기들을 읽게 된다. 행복의 이면에 숨어 있는 인생의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가 겪을 수밖에 없는 인생의 고난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반드시 넘어서야 한다. 주님은 거기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

노용찬 목사(라이프호프기독교자살예방센터. 빛고을나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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