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의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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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의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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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0.07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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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호프와 함께하는 ‘생명목회이야기’ (26)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아들을 잃은 어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그런대로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과도 사이 좋게 잘 지내던 아들이 어느 날 학교를 갔다가 일찍 들어왔다. 잃어버리고 간 것이 있어서 가지러 왔겠거니 하고 어머니는 생각했는데, 아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어머니에게 짤막한 인사를 한 후 그대로 옥상으로 올라가서 투신을 한 것이었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을 겪은 어머니는 그 후 몇 년 동안을 우울증으로 일어설 수가 없었다. 가장 괴롭히는 문제는 ‘왜?’라는 질문이었다. 당사자는 지금 곁에 없어 직접 물어볼 수도 없고, 학교 담임선생님이나 친구들이나 다른 친분이 있던 사람들도 그러한 답답함은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는 ‘죄책감’이었다. 그날 분명히 어머니는 아들을 만났다. 그러고 나서 곧 일어난 사고였다. 아들의 아픔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 어머니로서 그러한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그 시점까지 있었던 아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웠던 일들에 대한 회한과 죄책감에 어머니는 괴로워했다.

세 번째는 ‘분노’의 감정이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렇게 가버린 아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의 감정은 누구에게도 표현할 수 없는 힘든 감정이었다. 어떻게 어머니에게조차 말하지 않았을까? 말이라도 했다면 무언가 해결책이 있었지 않았을까?

네 번째는 ‘수치심’과 ‘고독감’이다. 아직도 이 사회는 자살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가족은 아무에게도 자신의 고통을 말할 수 없다. 오직 혼자서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고독과 외로움을 겪어야 한다.
이 분노의 감정은 단순히 아들을 향한 것만은 아니다. 어머니 자신에게도 일어난다. 아들에 대해서 무능했고,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고, 그래서 결국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생각에 자신에 대한 분노로 일어난다. 이것이 내면으로 향할 때 한없는 무기력과 우울증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아들을 잃고 괴로워하던 어머니는 잠도 잘 잘 수 없었고, 식욕도 잃어 체중이 많이 줄었을 뿐만 아니라 무기력감과 우울증으로 사회생활을 거의 할 수가 없었다. 도움을 받기 위해서 왔지만, 상담 치유도 오래 하지 못했다. 상담을 하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떠올릴 수밖에 없는 아들 생각이 너무나 힘들었던 것이다.

다시 거론하는 것이 죄송스럽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는 최 아무개라는 연예인 가족의 비극적인 사건을 잘 알고 있다. 그 가족의 경우를 통하여 자살자 유가족이 어떤 어려움과 고통을 겪고 있는지 잘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이 자살하면 그 사람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가족과 이웃이 적어도 5명이 넘는다. 이 사람들은 모두가 유가족이 겪는 심리정서적인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자살자 유가족을 위한 지원과 치유프로그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험과 관찰 결과를 보면 자살자 유가족은 기타 사람들에 비해 또 다른 자살 충동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것은 희망은 어떤 고난도 이기게 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자살자 유가족을 위한 위로 예배와 힐링 콘서트를 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모든 사회와 교회가 가장 소중한 가족을 잃은 상실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위로와 힐링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면 그들은 다시 새 삶을 살아갈 희망과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노용찬 목사 / 라이프호프기독교자살예방센터공동대표. 서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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