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내 동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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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내 동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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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9.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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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호프와 함께하는 ‘생명목회이야기’ (23)

어느 상담실에서 임상 지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사회적으로도 꽤 인지도가 있는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던 분이 지긋한 나이에 상담 공부를 하러 오셨다.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하시는지 같이 공부하던 젊은이들이 존경과 함께 은근히 그 동기를 궁금해 했다.

그분의 열공의 동기는 매우 분명하고 확실하였다. 바로 손아래 동생이 미국에 이민을 가서 잘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중년에 들어서면서 심한 우울증이 와서 돌봐주다 보니 더 알아야 할 것이 많아서 직접 공부를 해 보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례 발표 시간에 자연스럽게 자기 동생의 문제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동생의 상태가 생각보다 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동생의 상태가 어떤 정도인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고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집에 있을 때에는 절대적으로 혼자 두지 말라고 조언을 해 주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6개월 정도의 기간이 지났을 때였다. 수퍼비전 시간에 다시 만났길래 동생의 안부를 물었더니 뜻밖에도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때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전해주었다.

사건이 있던 날 동생은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이제 다 나았으니 괜찮다고 하면서 이제 혼자 있어도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다고 말하더라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밝아진 모습에 기쁜 언니는 동생의 말을 그대로 믿고 혼자 놔둔 채 잠시 시장엘 다녀왔는데, 와 보니 동생은 이미 목욕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였다는 것이었다.

그 시간이 채 30분도 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안타까워하는 것이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미 그 이전에 동생의 우울증상에 대해서 처음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런 가능성을 예상하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났을까?

한 가족일수록 사랑하는 가족 구성원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간절한 심리가 막상 의사나 상담사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가족의 자살 위험성을 알려주면 거부감부터 드는 경우가 많다. ‘설마 내 가족이 그럴 리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는, 동생이 가족의 감시를 풀기 위해서 마치 우울증이 다 나은 것처럼 가장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말 죽기로 결심한 사람의 경우 주변 사람들에게 누를 끼치거나 혹은 방해를 받을까 하여 철저하게 가장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더욱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 것은 동생이 빨리 나았으면 하는 바람을 강화시키는 요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마치 다 나은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그것이 자신의 결심을 결행하려는 가장된 행동과 말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되는 것이 자살 위험성을 가진 사람에 대한 공감적 민감성이다. 조금만 더 민감하게 위험 당사자의 말과 행동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더 많아지는 것이다.

옛말에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원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러기에 그 어떤 경우보다도 민감하고 철저하게 대해야 한다. 그것이 이 사회의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보듬어가는 운동인 것이다. 
                                            노용찬(기독교자살예방센터공동대표, 서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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