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자녀이기 이전에 ‘나’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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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자녀이기 이전에 ‘나’이고 싶어요”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0.04.16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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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오해와 이해 - 나는 목회자 자녀 입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서글픈 홍길동의 사연은 조선시대에서 끝난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21세기 홍길동이 존재한다. 교회에서만큼은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닌 목사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목회자 자녀들이 그 주인공이다.

그런데 가정으로 돌아오면 목사님은 다시 아버지로 돌아오지만 목회자 자녀라는 꼬리표는 교회 밖에서도 지워지지 않는다. 친구들과 똑같은 실수를 해도 너희 아빠 목사님인데 그래도 돼?’ 하는 비아냥이 따라붙는다. 평범한 또래 아이들처럼 마음껏 철없지 못하는 목회자 자녀들은 오늘도 착한 아이의 가면을 쓴다.

제가 목사는 아니잖아요

목회자·선교자 자녀 캠프 MPKC에서 사역하는 이다솔 목사는 그 자신부터가 목회자 자녀다. 목회자 자녀의 어려움을 묻자 단숨에 너무나 많다고 털어놓은 이 목사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고충을 꼽는 데는 깊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다. 목회자 자녀에게 거는 높은 기대치. 이것이 목회자 자녀가 겪는 대부분 오해와 갈등의 단초다.

고민도 많고 실수도 많을 시기, 어쩔 땐 부모님 앞에서 한껏 투정도 부리고 싶을 10대다. 하지만 교회에서 목회자 자녀들은 주일학교 학생이 아닌 작은 목회자가 된다. 목회자 자녀를 그저 그들 개인으로, 어린 학생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인 아버지의 분신처럼 바라본다. 아이의 삶과 신앙에서도 아버지 목회자에 걸맞은 도덕성이나 거룩의 모양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목회자 자녀라는 부담은 교회 밖에까지 따라온다. 특히 작은 규모의 마을이라면 동네 연예인에 가깝다. 학교를 가도 어디 사거리에 가도 무슨 교회 목사님 아들이네, 딸이네 하는 말이 따라온다. 심지어 믿지 않는 학교 선생님마저도 너희 아버지가 목사님인데라는 말이 습관처럼 나올 정도다.

이 목사는 목회자 자녀는 자기 자신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받기 전에 내가 아버지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먼저 배운다. 그런 점이 안타까울 때가 많다면서 아버지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겨도 어디 가서 얘기도 못한다. 친구들도 아버지가 목사인 것을 다 아는데 아버지 얼굴에 먹칠하지는 않을지 속으로 끙끙 앓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다보면 화나는 일이 있어도 참게 되는 경우가 많다. 소위 착한 아이 컴플렉스가 몸에 배는 것. 개척교회 목회자 자녀로 자란 전하진 씨는 사춘기 시절 교회 권사님이 생리대를 보내주셨다. 게다가 그 권사님 아들과 친구여서 너무 자존심이 상했는데 목사님 딸이기 때문에 웃으며 감사하다고 받은 기억이 있다면서 지금도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나의 행동 때문에 시험 들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늘 있다고 털어놨다.

 

목사님으로서의 아버지

목사님인 아버지와 살아가면 신앙생활도 늘 은혜롭고 순탄하기만 할까. 오히려 목회자 자녀들은 고개를 내젓는다. 이들은 아버지를 가정에서 만나는 자녀인 동시에 교회에서 설교를 듣는 회중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설교한 그대로 삶을 살아내는 완벽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목회자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나약한 죄인이다. 하지만 어린 나이의 목회자 자녀는 그 이질감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이다솔 목사는 목회자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회개하며 설교를 준비한다.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라면 괜찮지만 10대는 그렇지 않다. 아버지는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말만 늘어놓는 위선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 목회자 아버지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영적인 아버지인 하나님을 올바로 보지 못한다.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니 영적인 부분도 막혀있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사명과 헌신이 자녀에게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한국교회 대부분을 차지하는 작은 교회의 목회자 자녀들은 교회에서 역할이 전도사에 가깝다. 찬양 반주도, PPT와 주보 제작도, 안내도 모두 목회자 자녀의 몫이다. 힘에 부칠 때면 청년부 공동체를 통해 위로 받고 싶지만 작은 교회 목회자 자녀에겐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는다.

전하진 씨는 아버지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소명을 받고 목회자로의 삶을 결심하셨지만 나는 목회자 자녀로의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어릴 때는 목회자 자녀에게 맡겨진 삶이 버겁고 힘들 때도 많았다고 말했다.

 

목회자 자녀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전국 목회자 자녀 세미나를 개최하는 목회자사모신문이 목회자 자녀 52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교회생활에 대해 묻는 질문에 목회자 자녀라서 의무적으로 예배에 참석한다는 대답이 36.2%1위를 차지했다. ‘형식적으로 왔다 갔다 한다는 응답도 31.5%로 응답자 중 절반이 의무나 형식으로 교회를 다닌다고 답했다. ‘하나님이 정말 좋아서 예배 드리러 간다는 응답은 29.4%에 그쳤다. 신앙 교육과 전수를 업으로 삼고 있는 목회자이지만 정작 가정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케이스도 적지 않다.

하지만 10대 때는 힘들고 어려워하던 목회자 자녀들도 2030대를 지나고 보면 그 삶이 축복이었다고 돌아보는 이들이 많다. 그러고 나면 목회자 자녀는 어느 누구보다 교회에 뜨거운 애정을 쏟아낸다. 전하진 씨 역시 부모님을 부르신 이 사역이 귀하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에는 나 또한 이 사역에 동참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다솔 목사가 목회자 자녀 사역에 헌신하고 있는 이유도 목회자 자녀가 회복돼야 한국교회가 회복된다는 믿음에서다.

그는 담임목사님이 자기 자녀가 신앙생활도 안하고 교회도 제대로 안 나오는데 강단에 서서 가정의 신앙교육에 대해 당당하게 설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교인들 역시 그런 경우엔 자기나 잘하지하는 생각을 품게 될 것이라면서 목회자 자녀를 바로 세우는 것은 결국 부모인 목사님이 강단에서 제대로 된 말씀을 선포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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