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에서 이해로 가는 길…정답은 경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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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에서 이해로 가는 길…정답은 경청에 있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0.02.2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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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이해, 나는 ▭입니다

빨갱이친일파’, 우리나라 정치 갈등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두 단어다. 엄밀한 의미의 빨갱이친일파가 실제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겠냐마는, 그것은 서로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빨갱이친일파사이엔 수많은 정치이념이 산재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안중에도 없다. 그저 나와 생각이 다르면 빨갱이, ‘친일파로 몰아세우면 그만이다. 낙인처럼 찍힌 두 색깔의 이름표는 객관적 시야를 흐린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오독(誤讀)하고 서로의 존재를 오해(誤解)한다.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눈빛과 날이 선 혓바닥에 피비린내 나는 사회다. 처절한 갈등사회의 골을 메워보고자 많은 이들이 대안을 제시하지만 간격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는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어디 있을까. 어쩌면 뼈저린 갈등의 이면에는 서로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가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름표만 보고 갖는 오해는 교회 안에도 만연하다. ‘대형교회 목사라는 일반명사는 가치판단을 포함하지 않지만, 이 단어를 듣는 이들은 대부분 비슷한 감정에 휩싸인다. ‘담임목사부목사’, ‘보수목사진보목사’, ‘동성애자반동성애 운동가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이름표를 마주한 즉시 우리의 오해는 시작된다. 그들의 진짜 삶과 생각을 들어보기도 전에 말이다.

그래서 올해 기독교연합신문은 한국교회 속 수많은 이름들 한 명 한 명을 만나고 그들의 생각을 경청하기로 했다. ‘오해와 이해라는 제목으로 이름표 때문에 받는 오해를 풀고 치열한 삶의 현장을 통해 그들을 이해(理解)해보고자 한다. 각자의 생각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 오해를 넘어 이해로 나아가는 첫 계단이라는 생각에서다.

 

나만 옳다는 생각을 버려라

오해와 갈등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원로)는 자신만이 옳다고 여기는 자기 의가 그 출발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2:3)라고 말하고 있지만 크리스천들이 오히려 더 배타성이 강한 경향을 보인다는 것.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여기는 자기 의는 결국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매도하는 오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종화 목사는 몇몇 신앙인들이 반공주의를 신앙화하면서 이념갈등의 단초가 됐다. 교회 안의 교리갈등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들 자신의 교파만 옳다고 여기다보니 교파가 다르면 이단시하는 모습까지 발견된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해결 역시 자기 의에서 벗어나는 것에 있다고 봤다. 박 목사는 오해란 결국 자신과 다른 다양성을 다른 것이 아닌 틀린 것이라고 잘못 이해하는 사고방식이다. 갈등 역시 여기서 출발한다면서 “‘자기 의에서 벗어나 틀림을 다름으로 수용할 수 있을 때, 갈등 해결에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영신 교수(연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역시 서로를 향한 오해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서로가 부족함이 많은 인간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우리가 유한한 인간인 이상 그 누구도 정답을 독점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정답이라고 여기는 것에서 오해와 갈등이 시작된다편협한 이해관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겸허한 자세로 대화의 자리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경청과 대화가 갈등 해소 실마리

목회 현장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다. 어떤 교인이 목회자 사모에게 전화를 했는데 계속해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자 그 교인은 사모님은 수준이 높은 분이라 돈 많고 많이 배운 사람들의 전화만 받고, 나처럼 못 배우고 돈 없는 사람들의 전화는 받지 않는다는 둥, ‘교회도 돈 있고 많이 배운 사람들만 대접받는 곳이라는 둥 불평을 널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건은 교인의 오해였던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 교인이 사모의 번호를 잘 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소한 실수와 오해해서 비롯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오해가 풀리지 않고 계속됐다면 뒷이야기는 아찔하다. 계속된 불평을 들은 다른 교인들은 사모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품었을 테고 교회 역시 사람을 가려서 받는다는 오해가 널리 퍼졌을 것이다. 어쩌면 교회 공동체를 넘어 지역사회에까지 교회에 대한 오해가 나돌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사건 해결의 길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 교인이 사모에게 찾아가 직접 얘기를 들어보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다. ‘왜 전화를 받지 않았느냐는 짧은 질문과 대답 하나면 교회가 사람을 차별한다는 소문이 퍼질 일도 없었다. 이리저리 꼬인 실타래처럼 복잡해 보이는 문제들도 대화라는, 생각보다 단순한 방법으로 해결된다. 본지가 오해와 갈등을 풀어낼 열쇠로 경청에 주목한 이유다.

박종화 목사는 경청과 더불어 역지사지의 태도를 강조했다. 교파든 이념이든 위치의 차이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나의 무지함을 깨닫게 된다는 것. 다른 이들의 겉모습만 보고 생기는 오해 역시 역지사지의 자세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원수시하면 그것이 결국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면서 서로를 향한 오해를 풀 수 있도록 교회가 공론장의 역할을 감당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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