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척의 ‘성공 신화’ 깨진 지 오래
‘아무나 오라’는 식으론 생존도 어려워
시장분석 하듯 자기 역량·지역 살펴야
감리회 소속으로 의정부에서 하늘샘교회를 섬기고 있는 전웅제 목사. 그는 2011년 하늘샘교회의 세 번째 목회자로 부임했다. 부임 당시 교인이 아무도 없었던 교회였지만 전 목사는 교회를 개척한다는 심정으로 젊음과 열정을 불태웠다. 처음에는 전단을 만들어서 뿌렸지만, 7개월 동안 단 한 명도 교회로 찾아오지 않았다. 철저한 분석과 전략적인 판단이 뒤따르지 않았던 결과를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차츰 교회 주변의 환경에 눈길이 갔다.
“교회 옆에 학교가 세 곳이나 있는데 주변의 노후한 아파트 단지에서 오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방치된 아이들, 방황하는 일탈 청소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죠. 아이들끼리 모여서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모습도 자주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 무렵 아무도 찾지 않는 교회를 아예 개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는데, 우연히 아이들과 접촉하게 되면서 이 친구들이 마음껏 오고 가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죠. 교회 공간을 PC방처럼 꾸미고 만화책을 가져다 놨습니다. 심지어 코인노래방까지 설치했죠. 그랬더니 입소문이 무섭게 퍼지면서 하루에 수십 명의 청소년이 교회를 들락날락하게 됐습니다.”
그 가운데 복음을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생겨났고, 덩달아 장년 성도들도 늘어났다. 코로나로 잠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지금도 평균 80명 안팎이 함께 주일 예배를 드린다. 교인 대부분이 청소년이라 헌금 수입 자체는 많지 않다. 하지만 부족한 재정은 외부 강의와 후원을 통해 충분히 충당하고 있다. 지방회에도 ‘자립교회’로 이름을 올렸다. 전 목사는 “교회로 찾아오는 청소년을 기꺼이 환대하고, 교회가 해야 할 핵심 사역인 어려운 이웃을 돕는 구제도 펼치고 있다”며 어엿한 자립교회 담임목사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전략 없으면 2년도 못 버텨
혹자는 전 목사의 사례가 대단치 않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는 전 목사와 하늘샘교회를 ‘아주 귀한’ 개척의 성공 사례로 꼽는다. 교회가 속한 감리회뿐 아니라 여러 교회와 기관에서 그를 초청해 ‘비결’을 묻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눈부신 부흥·성장을 구가하던 때와는 기준 자체가 다르다. 오늘날 교회 개척을 준비하는 목회자들 가운데 과거와 같은 ‘성공 신화’를 꿈꾸는 이들은 많지 않다. 사실상 눈앞의 ‘생존’을 고민하기에도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전웅제 목사는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데려가는 나이 상한선을 대략 45살 정도로 본다. 보통 부목사님들도 자기 나이가 마흔 살이라면 이제 1~2번 정도 옮겨갈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면서 “문제는 개척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준비 없이 개척에 내몰리는 경우 목회가 오래 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생계의 문제로 대부분 2년을 버티지 못한다”고 했다.
이런 이들을 위해 전 목사는 2021년부터 개척교회를 준비하는 목회자들을 위한 세미나 ‘왓이프’를 시작했다. 인천의 ‘스페이스알’이라는 공간에서 교육을 진행하는데 현재까지 두 기수가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현장에서 개척 목회를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직접 강사로 참여하고, 천편일률적인 ‘프로그램’을 주입하는 대신 목회자 개인이 가진 부르심과 강점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특히 세미나 마지막 주에 수강생들이 경쟁 PT 방식으로 자신이 꿈꾸는 개척교회를 소개하는 ‘나의 교회 발표회’는 ‘왓이프’의 백미다. 우승자에게는 개척 지원금과 함께 목회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 1기 우승자였던 수료생이 ‘스페이스알’에서 교회 개척을 시작한다. 속한 교단으로부터 개척설립 허가까지 받은 상태다.
전 목사는 “왓이프 세미나에서는 목회자 본인의 특징이나 개척할 교회만의 특징, 지역사회와의 분명한 접촉점을 강조한다”며 “분명한 자기 분석과 타게팅이 없으면 교회 개척은 쉽지 않다. 문제는 교회 제도권 안에서 부교역자 생활을 하다가 개척에 내몰린 분들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아무 데서나 교회를 개척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를 지나면서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가는 방법, MZ세대가 교회를 찾아가는 방법이 바뀌고 있다”며 “나는 어느 세대에 관심이 있는가, 해당 세대에게 맞게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뭘까. 그 장점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를 고려하면서 어떤 지역에서 어떤 대상에게 어떤 목회를 하겠다는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타겟팅은 선택 아닌 필수
서울시 노원구의 패스커뮤니티교회(담임:지묘정 목사)는 ‘청년교회’를 표방한다. 이 교회 담임인 지묘정 목사는 부교역자로 오랜 기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다가 ‘열심히 키워놓았더니 청년이 되면 떠나는 현상’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청년들을 더 잘 담아낼 수 있는 목회를 꿈꾸며 개척에 나섰다. 청년 1명과 교회를 시작했는데, 개척 5년 만에 자립을 이뤘다. 비결은 역시 정확한 타겟팅이었다.
“청년들에 대한 마음이 워낙 컸고, 오랜 기간 찬양 사역을 해왔기 때문에 음악적 요소를 중요시하는 청년 사역에 강점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목회의 초점도 철저하게 청년들에게 맞추고 있죠. 많은 청년들이 봉사로 인해 소진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봉사도 헌신도 스스로 선택에 의해서만 참여합니다.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지 부담 없이 내려놓을 수 있고요. 재정 결정권도 청년들에게 부여하고, 설교도 청년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메시지를 주로 던집니다.”
‘지역의 흐름을 볼 수 있는 눈’도 교회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중요한 요소였다. 개척 초기, 지 목사는 지역을 철저하게 분석한 결과 교회가 자리하고 있는 노원 지역에 공연장이 없다는 것을 파악했다. 교회를 공연장으로 개방했더니 노원구 내 여러 학교의 밴드부가 패스커뮤니티교회에서 정기공연을 하기에 이르렀고, 이 점은 교회가 지역 청년·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는 접점이 됐다.
지 목사는 “가게를 열 때도 시장조사를 한다. 주변의 시장은 어떤지, 상권은 어떤지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물며 교회는 어떻겠느냐”며 “교회를 세울 지역에 없는 것이 무엇인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하고, 지역의 사랑을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타겟팅은 세대뿐 아니라 직업과 사는 곳, 성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소에 따라 가능하다. 백석대 교목부총장 장동민 교수는 “우리 사회가 파편화되어서 사람들 사이에 넘기 어려운 벽이 존재하게 됐다. 예컨대 뉴욕시 중심의 고급 아파트에 사는 여피(Yuppy)족과 셸터에서 잠자리와 식사를 해결하는 흑인들을 같은 방법으로 전도할 수 없다”며 “각각의 대상 그룹들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특별한 소명이 있어야 하고, 맞춤형 전도방법과 다양한 예배와 교회운영의 형태가 필요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또 “소위 ‘전통적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 교회들은 대부분 중산층이라는 특정한 그룹에 맞도록 특화되어버렸다”라며 “하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밀려난 사람들 혹은 부와 가난이 대물림 되는 시대에 가난의 편에 서게 된 사람들은, 교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이들에게 전도하려고 시도, 이들을 위한 교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