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원래 교회 개척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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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원래 교회 개척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다
  • 손동준
  • 승인 2023.03.1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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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기획 - 다시(RE) 세우는 한국교회⑦ Repair-고장난 교회 개척을 수리하라

장로회 전통에서 교회 개척은 철저한 ‘노회 소관’
현실적 대안은 분립…프랜차이즈식 확장은 곤란
‘지속가능성’과 ‘본질’ 확보를 위한 노력 ‘고무적’
스코틀랜드 수도 에딘버러에 있는 종교개혁가 존 낙스의 동상. 존 낙스에 의해 초안된 ‘제1치리서’는 ‘시찰감독’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들의 임무는 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를 세우는 일이었다. 존 낙스에 따르면 교회를 세우는 일은 개인이 아닌 철저한 ‘노회 중심’이어야 한다. 교회 개척의 ‘공교회성’이 실종된 오늘의 한국교회를 바로잡을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스코틀랜드 수도 에딘버러에 있는 종교개혁가 존 낙스의 동상. 존 낙스에 의해 초안된 ‘제1치리서’는 ‘시찰감독’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들의 임무는 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를 세우는 일이었다. 존 낙스에 따르면 교회를 세우는 일은 개인이 아닌 철저한 ‘노회 중심’이어야 한다. 교회 개척의 ‘공교회성’이 실종된 오늘의 한국교회를 바로잡을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공동예배로 모이는 기도처에 교회를 설립하고자 하면 입교인 10명 이상이 예배 장소를 준비하여 노회에 청원하여 승인을 받는다. 이것을 지교회라 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백석)의 헌법 제2장(교회) 제15조 1항에서 다루고 있는 지교회의 설립에 관한 내용이다. 백석총회뿐 아니라 대부분의 장로교단이 이와 유사한 헌법 조항을 가지고 있다. 이 내용은 교회를 설립할 때가 되어서야 노회와 접촉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다. 교회 설립과 분립, 합병과 폐지가 전적으로 노회의 소관이라는 점이 이 조항의 핵심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 개척에서 노회는 개척된 교회가 노회 가입을 원하면 허락해주고 상회비나 받는 것이 전부다. 

본래대로라면 이 부분이 개체교회가 개척의 주도권을 갖는 회중교회나 지역교회에 주도권을 허락하는 동시에 총회나 전도위원회가 개척의 책임을 지는 감독교회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어야 한다. 장로교회는 그 이름에 나타나는 것처럼 다수의 장로에 의한 치리, 즉 개인이 아니라 회(會)에 의한 치리를 근간으로 한다. 교회 개척도 철저히 ‘노회 중심’으로 굴러가야 비로소 정상적인 장로교회라 할 수 있다. 

세계에서 장로교회의 비율이 가장 높은 한국교회지만 장로회다운 개척 시스템은 전혀 작동되지 않고 있다. 교단과 관계없이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는 대부분의 교회 개척은 목회자 개인에 의해 이뤄진다. 목회자 개인이 마음만 먹으면 교회를 개척하고, 잘 안되면 언제든지 폐쇄할 수 있는 구조다. 문제는 개인에 의한 교회 개척은 대다수가 실패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교회가 잘 되든 못 되든 노회는 관심도, 간섭할 방법도 없다. 교회 개척에 한해서라면 ‘공교회’라는 개념이 사실상 전무한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노회가 책임지는 교회 개척

경북대 김중락 교수(말씀동산교회 장로)는 이런 현실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지난 2020년 기윤실 ‘좋은나무’에 실린 글에서 김 교수는 ‘한국식 교회 개척’의 실패 원인의 하나로 무너진 노회 시스템을 꼽았다. 

김 교수는 “노회는 교회 개척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며 “노회는 교회 개척에 대한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회를 세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사역자를 세우는 것이며 그런 다음에는 노회에서 예배를 위한 적절한 공간과 시설, 그리고 사택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노회는 개척 교회가 자립할 때까지 사역자의 정당한 사례와 교회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해야 한다”며 “사역자가 개인의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나라를 위한 사역을 하는 것이고, 노회가 이를 맡겼다면 노회가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한두 가정으로 구성된 교회가 교인에게 너무 큰 부담을 준다. 개개인의 희생만 강요하는 개척은 실패하기 십상”이라며 “노회는 일정 기간 개척 교회에서 봉사할 이들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가능하면 인근에 인력의 여유가 있는 교회에 부탁하여 1년 또는 2년 동안이라도 교사와 찬양 인도 등으로 봉사할 인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은 ‘말씀이 필요한 곳’에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이 표현은 종교개혁 직후 존 낙스가 ‘시찰감독’이라는 직분을 세워 교회 개척이 필요한 곳을 찾았던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런데 ‘대한예수교장로회’ 명칭을 가진 교단만 286개(2018년 기준)에 달하다 보니 ‘말씀이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교단마다 각자 판단하게 된다. 같은 지역 내에서 다른 교단의 노회가 각각의 교회 개척을 해도 막을 도리가 없다. 자연스럽게 경쟁적인 분위기가 연출되고, 소모적인 경쟁 속에서 도태되는 교회들은 소멸의 수순을 밟는다. 한국식 교회 개척의 또 다른 비극이다. 

김 교수는 “지역별로 주요 장로회 교단의 노회들, 즉 같은 지역을 관할 구역으로 두고 노회들이 협의체를 구성하여 교회 개척과 난립의 문제를 조정하도록 하자”며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 협의체에서 서로 간의 경쟁을 막고 가장 잘 준비된 노회에 개척을 하도록 조정한다면 적어도 한 건물에 교단이 다른 네 개의 교회가 문을 여는 모습은 보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은 공교회성 회복

건강한작은교회동역센터 운영위원 이진오 목사(세나무교회 담임)도 “노회나 지방회가 공교회적으로 교회를 개척하고 목사를 청빙을 받는 좋은 전통이 이미 깨졌고, 그것이 한국교회의 큰 문제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회나 지방회 주도의 교회 개척이 사라진 상황에서 그나마 대안이 되는 것이 지교회의 분립이다. 적절한 재정과 인원, 목회적 노하우를 가지고 분립하는 것인 만큼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분립개척은 공교회적이면서도 목회가 독단적으로 흐르지 않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목사는 오늘날 대부분의 분립개척이 마치 프랜차이즈 브랜드 퍼져 나가듯 ‘지교회의 지교회’가 되는, ‘또 다른 모습의 대형교회’를 이루는 식이 주를 이루는 점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특히 ‘부목사를 내보내 지교회를 세우는 형태’의 경우 교인을 함께 파송한다고 해도 원 교회의 시스템에 익숙한 교인들이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중간에 교회를 떠나는 일도 다반사라고 했다. ‘목회 역량’이라는 측면에서도 부교역자들이 원 교회 담임목사를 넘어서기가 여간 쉽지 않다 보니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그래서 이 목사는 부목회자를 보내는 분립이 아니라 담임목사가 섬기던 교회에서 파송 받아 직접 분립개척을 하는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미 광교산울교회(담임:이문식 목사)나 향상교회(담임:김석홍 목사), 분당샘물교회(담임:채경락 목사) 등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분립하여 좋은 사례를 남긴 바 있다. 

지난해 행신침례교회를 사임하고 울산에서 낮은담교회를 개척한 김관성 목사도 이와 유사한 사례다. 정든 교회를 떠나는 것이 쉬운 선택은 아니었지만, 후배 목사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김 목사는 “개척을 하더라도 제가 하는 것이 목회 경험이나 인지도, 개척 노화우 등의 측면에서 확률적으로 교회가 세워질 가능성이 크겠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이 있었다”며 “감사하게도 제가 떠난 후에도 행신침례교회에는 타격은커녕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새로 개척한 낮은담교회는 6개월 만에 아이들 포함 500명가량이 함께 예배할 만큼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교회가 분립하는 형태 외에도 교단 교파를 넘어 교회 개척을 꿈꾸는 이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개척정신을 공유하고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홍민기 목사가 이끄는 ‘라이트하우스 무브먼트’다. 이들은 2019년 라이트하우스 해운대와 방배(현 서울숲), 달라스(미국)를 시작으로 약 20개의 교회를 개척하여 각 지역에서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힘쓰고 있다.  앞서 소개한 김관성 목사가 시무하는 낮은담교회도 ‘라이트하우스 울산’이라는 이름으로 동참하고 있다. 네트워크에 속한 교회 중 일부가 든든하게 성장함에 따라 어려운 교회에 대한 지원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라이트하우스 무브먼트에 속한 모든 교회가 하나의 이름으로 의미 있는 사역을 펼칠 수 있다는 점도 이 운동의 큰 장점이다. 일종의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셈이다. 라이트하우스 고양의 안창국 목사는 “라이트하우스 무브먼트는 기본적으로 ‘선교’와 ‘긍휼’이라는 두 기둥을 중요시한다”며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을 때나 이번에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때도 ‘라이트하우스 무브먼트’에 속한 다른 교회와 함께 성금을 모아 의미 있게 전달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백석)의 헌법 제2장 제15조는 지교회의 설립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대부분의 장로교단 헌법은 교회의 설립뿐 아니라 분립과 합병, 폐지까지 모두 노회의 소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백석)의 헌법 제2장 제15조는 지교회의 설립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대부분의 장로교단 헌법은 교회의 설립뿐 아니라 분립과 합병, 폐지까지 모두 노회의 소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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