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상에 절을 하는 것, 우상숭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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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상에 절을 하는 것, 우상숭배일까요?”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1.03.16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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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하는 십계명, 다시 쓰는 신앙행전 (6) 우상숭배는 어디까지?

가장 친한 친구로 고민 없이 꼽을 수 있는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와는 달리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러나 담담하게 그 친구는 아버지의 죽음을 알렸다. 오랜 기간 투병 중이셨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저 노는 것에만 정신이 팔렸던 20대 초반의 일이다.

처음 경험한 장례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터라 친지들의 장례식은 대부분 기독교식으로 치러졌다. 어쩌면 그 날은 성인이 되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알고 일반적인 장례식을 접한 첫 번째 날이었다. 당시 나는 낯선 죽음 앞에 절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이곤 친구와 가족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 친구도 기독교인이라 절을 하지 않는 나를 이해해줬다.

그런데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은 가끔 의문이 든다. 기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고인에게 절을 하는 것에 주술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것을 우상숭배라고 단호히 배격해야 하는 걸까. 장례식과 명절, 제사상 앞에서 절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는 아직도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고민거리 중 하나다.

제사는 우상숭배일까

제사상에 절을 하는 문제는 어떤 이에게는 가정의 평화와 결혼 생활이 걸려 있는 중대사건이기도 하다. 최근엔 믿지 않는 가정에서도 소모적인 옛 문화라며 제사를 지내지 않는 곳도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제사 문제로 집안 갈등을 겪는 일이 종종 들려 온다.

이 문제는 비단 오늘날의 크리스천에게만 주어진 고민은 아니었다. 구한말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제사를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금지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 내에서 제사상에 절을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당시에도 다른 의견이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기독교인 독립운동가였던 월남 이상재 선생이다. 이상재 선생은 1920년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조상 신주를 우상이라 하는 것은 반드시 옳다 할 수 없다. 제사는 부모를 그리며 사모하는 효성에서 나온 것이다. 예수교와 아무 상관이 없을 뿐 아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하신 하나님의 가르침에 크게 적합되는 일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사를 우상숭배가 아닌 효심의 표현으로 본 것이다.

비슷한 의견은 오늘날에도 찾아볼 수 있다. 이정배 교수(전 감신대)미신적 요소를 제거한 최소한의 유교 제사는 기독교 신앙의 의미와 내용을 풍성하게 한다면서 유교 제사의 부정적 모습을 지우고 긍정적 모습을 활성화하면 우리 사회를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은선 교수(안양대)천주교의 제사 허용에 따라 기독교 진보 진영에서는 제사상에 절을 하는 경우도 있다그러나 한국의 제사는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복을 비는 성격이 강하고 기독교도 그러한 요소가 많다는 비판을 받는 상황이다. 이때 절까지 허용한다면 신학적으로나 한국문화 전통으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신앙의 선배들은 많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때로는 생명을 걸어서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켜왔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불이익을 당하는 걸 원망할 필요는 없다면서 제사상을 차릴 수도 있고 음식을 만들 수도 있다. 다만 절만 못하겠다고 하면 된다. 본질이 아닌 부분을 양보하면 상대방도 이해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대안은 추도예배

그렇다면 우리는 우상숭배를 금지한 1계명과 제사문화 사이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이경직 교수(백석대)는 외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교회만의 특별한 문화, 추도예배를 대안으로 꼽았다.

이 교수는 각 시대 문화에 복음이 전해졌을 때 신앙의 선배들이 내린 결정이 있다. , 담배를 안 하는 것이 그 예 중 하나다. 우리나라가 술, 담배로 망하던 시절 기독교인의 이런 모습이 상징적으로 세상과 구별된 모습이 됐다. 반면 외국에서는 신학자들도 술, 담배를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는 각 시대와 문화적 컨텍스트(context)에 따라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다. 유교의 제사가 조상신을 모시는 것이라는 통념 하에서는 제사상에 절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는 외국에 없는 특별한 문화를 만들어 냈다. 바로 추도예배다. 우리 전통 문화에 따라 조상에게 예의를 갖추면서 우상숭배적 요소를 없앤 타협점을 만들어낸 것이라면서 만약 믿지 않는 가정이나 공동체에 속해 추도예배로 대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제사상에 절은 하지 않되 산소를 돌보거나 부모님을 챙기는 일에 다른 자손보다 더 잘하면 된다. 이를 통해 믿는 사람이 도리어 효를 더 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때 믿지 않는 친지들의 시선도 달라질 것이라고 권했다.

이은선 교수도 교회는 추도예배의 성격을 잘 가르쳐서 건전한 신앙과 함께 조상을 공경하는 마음을 갖도록 해야 한다. 제사의 우상숭배적 요소를 제거하면서 제사가 가진 효도와 조상 기념, 가족공동체 유지 등의 가치를 어떻게 지속해나갈지가 교회의 과제라고 말했다.

결국 조상도, 다른 사람도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 1계명을 적용하며 사는 크리스천의 자세라고 이경직 교수는 덧붙였다. 그는 모든 문제를 주님께 아뢰고, 모든 해답을 주님으로부터 받고, 모든 위로를 주님에게서 찾는 것이 1계명의 핵심이라면서 세상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 지에 관계없이 하나님이 나를 자녀 삼아주신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이고 은혜인지 기억할 때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믿음으로 1계명을 지키며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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