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입장에 선 브루너, 자유주의신학의 주장 뒤집어
상태바
개혁주의 입장에 선 브루너, 자유주의신학의 주장 뒤집어
  • 박찬호 교수 백석대
  • 승인 2023.07.19 23: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찬호 교수의 목회현장에 꼭 필요한 조직신학_19) 바르트와 브루너의 자연신학 논쟁
박찬호 목사
박찬호 목사

칼 바르트(1886~1968)와 에밀 브루너(1989~1966)는 스위스 개혁교회 출신의 신학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 다 신학교수로 사역하기 전 10여 년의 목회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주의하게 자유주의신학자들이라고 소개되기도 하지만 신정통주의 신학을 주장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16세기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 시대의 신학은 긍정적으로 수용하지만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시대의 신학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바르트나 브루너 두 사람은 자신들이 배운 자유주의신학을 뒤집어엎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신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인간에 대한 낙관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에 대한 낙관론은 1914년에서 1918년의 1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결정적으로 무너지게 되었고 전쟁 직후에 출간된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 Der Römerbrief>은 자유주의신학자들이 노는 놀이터에 던져진 폭탄이 되었다.

자유주의신학을 허무는 데 공헌한 사람으로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인류애를 실천한 공을 인정받아 195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으로 알버트 슈바이처(1875~1965)가 있다. 슈바이처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로 바하 음악의 대가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슈바이처가 또한 탁월한 신학자였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1906년 슈바이처는 <역사적 예수 탐구의 역사, 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 1910년>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예수님이 외치셨던 하나님의 나라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하였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라고 주장하였다. 슈바이처는 1931년에는 <바울 사도의 신비주의>라는 책을 출간하여 바울의 핵심적인 사상이 이신칭의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통한 신비적 연합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슈바이처의 이 책들은 여전히 신약신학자들 사이에서 토론 연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신학을 허무는데 함께 기여했던 일단의 신정통주의 신학자들 가운데 단연 바르트와 브루너는 대표적인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연대(連帶)는 오래가지 못하였고 서로의 신학적인 입장의 차이가 드러나면서 결별하는 과정을 밟게 되었다. 바르트와 브루너 사이에 갈등이 시작된 것은 1929년으로 알려져 있다. 스위스의 취리히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던 브루너에 비해 당시 독일의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던 바르트는 나치의 위협에 대해 훨씬 더 민감하였을 것이다.

1934년 브루너는 바르트가 자신을 변절자로 비난하는 것에 대해 자연신학의 중요성을 옹호하는 ‘자연과 은혜: 칼 바르트와의 대화’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논조는 점잖고 매우 온건하였다. 하지만 브루너의 논문에 대해 바르트는 불같은 격렬한 논조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논문의 제목은 “아니오!”(Nein)였다. 영어로는 “No!”였는데 역사상 가장 짧은 논문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브루너와 바르트는 이 일로 결정적으로 결별하게 되었고 죽을 때까지도 화해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지만 말년에 화해하였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루이스 벌코프(1873~1957)의 <조직신학>은 우리나라 보수적인 장로교회 신학 형성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박형룡 박사가 총신에서 벌코프의 <조직신학>을 번역하여 학생들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벌코프의 <조직신학>은 헤르만 바빙크(1854~1921)의 <개혁교의학>의 영문축약본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벌코프가 자신의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바르트의 신학에 대해 비교적 공정하게 소개하고 있는 부분은 벌코프가 단지 바빙크 신학을 답습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벌코프는 1934년의 자연신학에 대한 바르트와 브루너의 논쟁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바르트는 일반계시의 기초 위에 신학을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형상이 죄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에 자연인에게는 아무 접촉점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브루너는 일반계시를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더럽혀져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는 것을 부인한다. 브루너는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내용적으로는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형식적으로는 그렇지 않으며, 자연인에게는 계시가 스스로를 연결시킬 수 있는 접촉점이 남아 있다고 보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바르트보다] 브루너가 확실히 개혁신학의 입장에 근접해 있다”라고 벌코프는 브루너의 판정승을 선언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