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요한계시록 2:1~5
찬송: 563장
에베소 교회에게 말씀하시기를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하십니다. 여기서 사랑은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우리를 사랑하는 아가페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함께 한다는 확신이 어느 순간부터 에베소 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많은 고난과 시련 가운데 믿지 못하고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주께서 찾아오셔서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오래가지 못 할 뿐만 아니라 항상 뜨거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은 항상 변함없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하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떠나지 않으시고 항상 보호하시고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또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자기에게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붙는 여인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눅 7:47) 예수님의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확신이 있으면 이 여인처럼 옥합을 깨뜨려 가장 뜨거운 사랑, 헌신적인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처음 행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하루도 하나님은 나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한다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다시 일어나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 오늘도 주님의 사랑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요셉과 하나님의 위로
창세기 41:50~52
찬송: 540장
하나님은 자기 사람을 위로합니다. 믿음이 너무 좋은 분은 하나님의 위로를 영적인 것으로만 국한 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위로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만 아니라 물질, 명예, 자녀 등등 여러 경로로 위로합니다. 하나님은 17살에 노예로 팔려 온갖 고난과 고초를 겪은 자기 사람 요셉을 위로합니다. 부자로 만들어 주고, 총리도 되게 하고, 좋은 아내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하신 최고의 위로는 두 아들입니다. 장남은 ‘므낫세(잊어버림)’이고, 차남은 ‘에브라임(창성함)’입니다. 요셉의 인생에 맞추어 ‘므낫세’의 뜻을 풀어보면 “하나님이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입니다. 요셉의 인생에 맞추어 ‘에브라임’의 뜻을 풀어보면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입니다. 요셉이 두 아들의 이름 “므낫세야, 에브라임아”하고 부를 때마다 자신을 위로하신 하나님의 위로를 확인합니다. 요셉이 두 아들을 볼 때마다 두 아들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을 위로하신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봅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위로거리가 아니라 근심거리, 기도거리로 전락한 시대입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아버지 요셉에게 하나님의 위로, 하나님의 사랑이 된 것처럼 우리도 부모님에게 하나님의 위로, 하나님의 사랑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나를 통하여 내 부모가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듣는 귀가 복된 귀
사무엘상 9:1~27
찬송: 205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첫 번째 왕은 사울입니다. 그는 유력한 집안에서 태어난 준수한 청년이었습니다(1~2). 사울의 마지막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아버지로부터 임무 하나를 부여받았습니다.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아오라는 임무입니다(3). 두루 다니며 찾아보았지만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습니다(4). 다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사환이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보라 제안합니다(6). 나중에 밝혀지지만 사환이 말한 하나님의 사람은 사무엘입니다. 사울은 사환의 말을 무시할 수 있었지만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습니다(10:1). 사울은 왜 암나귀들을 찾지 못했을까요? 가볼 만한 곳만 갔기 때문입니다. 두루 다니며 죽도록 수고하지만 없는 것이 빈 손으로 돌아서기는 사울이나 우리들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러나 자기 지혜와 경험에 갇혀 있지 말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습게 여기는 ‘사환’ 같은 자들을 통해 그분의 생각을 전달하시기도 합니다. 마음을 열고 오늘 나를 향해 말씀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오늘의 기도
인자하신 하나님, 오늘도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뜻 가운데 다니게 하옵소서.
천국의 백성인 어린이
마가복음 10:13~16
찬송: 561장
천국은 낮은 자, 어린 자, 경험 없는 자, 배운 것도 별로 없고, 실수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가난하며, 다른 이들보다 경쟁력이 약한 그런 사람의 나라입니다(14). 어린아이란 어린아이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이런 모든 낮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세상에서는 뒤질지라도 그들의 그 낮음을 통하여 천국에 들어갈 문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천국은 그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드는 사람의 나라입니다. 여기 ‘받들다’란 ‘받아들이다’, ‘움켜잡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천국을 어린아이들처럼 받아들이고 움켜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마음을 가진 자세로 천국을 대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어린이들이 주님께 나아오려 했을 때 가로막는 제자들의 권위 앞에 방해와 무시도 당했고, 상처도 입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그 가운데 주저앉지 않고 주님의 만져주심을 향한 집념을 나타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고, 받아들이며, 움켜쥐는 집념으로 천국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에게 말 한마디라도 더 축복해야 합니다. 그들이 소외되고 버려질 때 우리는 그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하면 주님께서 그들을 친히 복되고 지혜롭게 자라게 해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날마다 천국을 경험하는 자녀들로 살게 하소서.
지켜야 할 것
열왕기하 5:20~27
찬송: 420장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여 주셨는데,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하는 다양한 이유 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본문에 게하시의 모습처럼, 재물에 마음을 빼앗긴 성도, 교회, 교회 지도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헛된 욕심, 부하고자 하는 마음, 헛된 권세와 명성에 사로잡혀 복음의 빛을 가리우는 사람들이 게하시의 모습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아람의 군대 장관의 높은 권세와 힘에 좌우되지 않고 오히려 나아만을 향하여 마중도 나가지 않고 종을 보내어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통보합니다. ‘누가 권세가 있고 누가 높고 존귀한 사람인가?’에 대해 하나님은 엘리사 선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붙들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사는 사람이 권세가 있고 높고 존귀한 사람이라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 엘리사 선지자가 게하시에게 들려주는 말씀이 귀하게 들렸으면 합니다. 우리의 시대에 영적으로 거룩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 한 사람이 되어 시대를 향하여 담대하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친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목소리를 세상에 울려 퍼지게 하는 삶이 되길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세상의 좋은 것들 유익한 것들 앞에 하나님의 백성 다움을 잃지 않고 회복하게 하소서.
“다 아십니다”
시편 139:1~4
찬송: 310장
하나님은 나의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이를 깨닫거나 다 고백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는 않는지 생각해 봅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그가 경험한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첫째,‘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부족한 것, 틀리는 것을 감싸주시고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도와주어야 할 것인지 그것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내 자녀에게만 눈길이 머무르는 것처럼 하나님도 나를 그렇게 보고 계십니다. 내 눈길이 머문 곳에 하나님도 함께, 내 마음이 머문 곳에 그분의 마음도 함께 계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cctv는 고장없이 24시간 풀가동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보시고 나를 아실뿐 아니라 듣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아십니다”라고 함께 고백해야 합니다. 그 분은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를 100% 알고 계신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진실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도 아시고, 내 형편도 아시며 나를 보고 계시며 알아주시는 그분은 우리 가정의 아픔도, 남몰래 흘리는 나의 눈물도, 힘겹게 섬기는 나의 사랑도 아십니다. 그분은 좋으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내가 그 아버지 앞에 살면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역사하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의 기도
말하지 않아도 알고 계시는 아버지 의지합니다. 함께해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