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많은 우상들…당신은 무엇을 의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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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많은 우상들…당신은 무엇을 의지하는가
  • 손동준 기자
  • 승인 2021.03.0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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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하는 십계명, 다시 쓰는 신앙행전 ④ 하나님 곁에 선 ‘돈과 지식’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영화 ‘데칼로그’. 영화는 십계명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감각적 영상으로 구현해 냈다.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영화 ‘데칼로그’. 영화는 십계명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감각적 영상으로 구현해 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로 시작하는 노래 ‘가시나무’. 노랫말을 쓴 시인과 촌장의 멤버 하덕규 씨가 목사가 됐다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아도, 기독교인이라면 이 노래를 듣고 ‘당신’이 누구인지 직관적으로 알아챌 수 있다. 

십계명의 첫 번째인 1계명은 내 속에 ‘당신’이신 하나님 외에 무언가가 너무도 많은 상황을 경계한다. 지난해 생명의말씀사에서 출간된 책 ‘모든 것의 시작 제1계명’에서 저자 박순용 목사는 “‘당신은 제1계명을 잘 지키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이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며 “하지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1계명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계명이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빈번히 범하고 있는 계명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 곧 수많은 우상을 우리의 마음에 나란히 두고 섬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목사인 팀 켈러 또한 자신의 저서 ‘내가 만든 신’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비종교적인 것 같아도, 우리 마음은 사실 이 시대의 화려한 각종 우상이 지배하고 있다”고 썼다. 
 

악마의 가면을 벗은 맘몬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1계명을 범하게 하는 우상 가운데 ‘돈’은 둘째가라면 서럽다. 미국의 유명 작가 펄 벅은 ‘권력’, ‘쾌락’과 함께 ‘돈’을 현대인의 대표적인 우상으로 꼽았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해 섬기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성경에서 ‘하나님’과 ‘재물’을 “두 주인”으로 묶어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어 성경(킹제임스버전)에서 ‘재물’은 ‘맘몬(mommon)’이라는 단어로 쓰였다. 뉘앙스 상 ‘맘몬’은 ‘재물’보다 더욱 복잡한 의미를 갖는다. 중세 시대에는 맘몬을 탐욕과 부유함, 부정직을 관장하며 두 개의 새 머리, 검은 몸, 발톱을 가진 손발이 있는 모습을 한 악마로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맘몬은 ‘악마의 형상을 한 존재’가 아닌 번영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표현되곤 한다. ‘헤지펀드의 대부’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가 금융자본을 ‘번영의 선구자’라고 표현한 것이 대표적이다. 금융자본이라는 맘몬은 지금도 전 세계의 무수한 사람들을 금융 시장이라는 숫자의 바다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주식’ 열풍이 불면서 이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점령한 지구에서 초국적 금융 자본은 정부까지도 그 영향권 아래로 가져다 놓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누군가 ‘돈’을 자신의 최고 가치로 여긴다고 해서 결코 이상하지 않다. 청소년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15년 발표된 한 조사(청소년 정직지수 조사)에서 한국 고등학생 100명 중 56명이 “10억원이 생긴다면 잘못을 하고 1년 정도 감옥을 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전한 바 있다.

최근에는 실천신학대학원 21세기교회연구소(소장:정재영) 등이 기독 청년(19세~39세)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독 청년들의 사회 및 신앙의식에 대한 조사’에서 응답자 92.3%는 “우리 사회는 돈이 최고의 가치”라고 답했다. ‘돈’의 무시무시한 영향력 앞에 크리스천이라고 자유롭지 않다는 방증이다.

팀 켈러는 “우상이 우리 마음을 장악하면 결국은 성공과 실패와 행복과 슬픔의 정의가 몽땅 변질된다”며 “우상의 기준대로 현실이 재정의 된다. (중략) 결국 악을 선이라 하고 선을 악이라 하는 게 우상 때문에 가능해 진다”고 경고했다.
 

‘돈이 최고가 된 사회’라고 생각하는 기독 청년들이 늘어난 가운데 이들의 시선에 맞는 신앙교육이 요청된다. 
‘돈이 최고가 된 사회’라고 생각하는 기독 청년들이 늘어난 가운데 이들의 시선에 맞는 신앙교육이 요청된다. 

 

‘지식’이라는 신

상업 광고에서 자주 애용하는 용어가 바로 ‘과학적’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그것이 과학적인가 아닌가는 큰 의미가 없다. ‘과학적’이라는 수식어만 붙어도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과학적’이라며 철석같이 믿어왔던 것들로부터 여지없이 배신당하는 일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지식을, 이성을, 과학적이라는 말들을 지나치게 맹신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연작영화 ‘데칼로그’(1987년 3월~1988년 4월) 첫 번째 편에는 이같은 상황이 절묘하게 그려진다. 이 영화는 십계명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구현해 낸 수작으로 꼽힌다. 영화의 제목인 ‘데칼로그’는 그리스어로 ‘십계명’을 말하는데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은 각 계명들이 의미하는 바가 우리의 현대적 삶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 등장인물 파웰은 컴퓨터 언어학 교수인 아버지와 단 둘이 산다. 파웰은 죽은 강아지를 본 뒤 삶과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품지만, 영혼이나 종교란 단지 사람들이 편히 살기 위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아버지는 건성으로 대답할 뿐이다. 파웰과 아버지는 컴퓨터를 통해 집 앞 호수에 언 얼음이 그 위에서 뛰어놀 만큼 두꺼운지 계산한다. ‘괜찮다’는 컴퓨터의 계산 결과를 받아들고, 다음날 파웰은 홀로 호숫가로 나간다. 파웰의 귀가를 기다리던 아버지는 시간이 지나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불안감에 휩싸인다. 이유 없이 컴퓨터가 꺼지고 잉크병이 깨지자 아버지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이윽고 호수 얼음이 깨져 사고가 났다는 소리가 바깥에서 들려온다. 컴퓨터가 틀릴 리가 없다고 되뇌지만 이성에 대한 그의 믿음은 무너지고 말았다. 

영화는 이성을 신으로 숭배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아버지를 통해 잘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아버지는 그나마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근거는 가지고 있었다. 현실 속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마저도 없이 스스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 인간은 근대를 거치면서 신보다는 이성, 신앙보다는 과학에서 더 많은 확실성을 찾았고, 이것들을 통해 삶에 깔린 불안들을 떨쳐버리는 데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실제 과학과는 멀어진 채 ‘과학적’이라는 말만 붙어도 너무도 쉽게 자신의 믿음을 내어주고 있다. 

영화 ‘데칼로그’에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과학은 무용하고 신학이 유의미하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과학이나 인간의 이성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헛되고 오만한 것인지 담담하게 경고할 뿐이다. 과학적 사고의 원천은 기존의 지식에 대해 ‘의식적으로 반성’하는 것임에도 우리는 과학을 너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도록 교육받아 온 것은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판단할 때 그 기준이 ‘하나님’ 대신 ‘내 지식’, 혹은 타인에 의한 ‘과학적’이라는 말이라면 그 또한 1계명을 범하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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