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동시에 다른 것을 섬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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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동시에 다른 것을 섬긴다면?”
  • 손동준·한현구 기자 
  • 승인 2021.02.0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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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천하는 십계명, 다시 쓰는 신앙행전
② 십계명의 터전 1계명
1계명은 창조주인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더 사랑하는 것, 혹은 하나님과 동시에 섬기는 것을 경계한다. 돈은 현대인이 가장 사랑하는 ‘우상’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1계명은 우리에게 하나님보다 돈을 더 의지하지 않았는지, 철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1계명은 창조주인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더 사랑하는 것, 혹은 하나님과 동시에 섬기는 것을 경계한다. 돈은 현대인이 가장 사랑하는 ‘우상’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1계명은 우리에게 하나님보다 돈을 더 의지하지 않았는지, 철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제1계명  :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20:3)

십계명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1~4계명과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5~10계명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이 첫 번째 계명은 십계명의 기초이자 십계명이 서 있는 터전이라 할 수 있다. 

2계명과의 차이

본격적으로 1계명에 대한 내용을 다루기에 앞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소개하고자 한다.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십계명과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십계명, 유대교에서 사용하는 십계명은 큰 틀에서는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소 간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유대교에서는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대목을 1계명으로 삼는다. 2계명에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에 우리가 아는 2계명 “우상을 만들지 말라”를 더했다. 따라서 유대교의 2계명은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지 못한다. 그 모양을 본따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가 된다.

반면 가톨릭의 1계명은 개신교와 같고, 2계명에서 “우상을 만들지 말라” 대신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로 했다. 그러면 십계명이 아니라 ‘구계명’이 되는 것은 아닌가하고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가톨릭에서는 10계명의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를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로 바꾸고 9계명으로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를 별도로 추가해 10가지를 완성시켰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성경에서 십계명을 “첫 번째, 두 번째…”하는 식으로 넘버링 하지 않은 탓이다. 때문에 각각의 전통에 따라 편집해 약간씩 다른 십계명들이 탄생했다. 개신교의 십계명은 기원후 1세기경 유대인 필론의 구분을 따른다. 필론은 십계명이 적힌 출애굽기 20장 1~17절을 10개의 계명으로 분류했는데 이후 성 아우구스티누스 등 교부들이 ‘우상숭배 금지’의 내용이 첫 번째 계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하나로 통일시켰다. 천주교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분류법을 따랐고, 개신교는 16세기 종교개혁가들을 따라 필론의 분류법을 채택하면서  차이가 생긴 것이다. 

그러면 이 대목에서 개신교 전통이 따르는 1계명과 2계명이 어떻게 다른가를 짚어보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강영안 교수(미국 칼빈신학교 철학신학 담당)는 자신의 저서 ‘십계명 강의’(IVP)에서 “1계명은 ‘나 이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것이고 2계명은 어떤 형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나타내는 어떤 모양, 그것이 하늘에서 가져온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물속에 있는 것이든 간에 어떤 모양으로든 하나님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라며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경배하는 행위, 곧 우상숭배 금지는 1계명의 내용이고, 2계명은 우상숭배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어떤 상으로 만들어서 표현하려는 일을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상을 멀리하라

결국 개신교 전통에서의 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2계명과 달리 우상숭배에 대한 내용에 집중하고 있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그런데 보통 우리가 ‘우상’에 대해 말할 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강 교수는 피조물을 하나님과 ‘동시에’ 섬기는 것 또한 ‘우상숭배’라고 지적한다. 

그는 요한일서 5장을 근거로 제시하는데, 4절에서 “무릇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말한 뒤 곧이어 21절에서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 멀리하라”고 명령하신다는 것.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세상을 이긴다는 믿음을 강조해놓고 곧바로 우상을 멀리하라고 경고한 것은 우리가 예수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얼마든지 우상을 섬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강 교수는 “사람들이 하나님 면전은 아니지만 그 뒤에서 다른 신을 두려고 할 수도 있다”면서 “이 점이 그리스도인이 늘 깨어 있어야 할 이유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과 나란히 우상을 섬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성공, 돈, 성취, 사랑, 자녀, 오락… 이런 것들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우리 안의 우상 후보들이다. 이 우상들은 때로는 예수님보다 앞에, 혹은 예수님과 나란히 놓이곤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짖으면서, 우리의 유일신 하나님을 마치 이런 것들을 주시는 자판기처럼 치부한다. 우리는 그것을 ‘기복신앙’이라고 말한다. 기복신앙은 그 자체로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는 죄가 될 수 있다. 

십계명이 선포됐을 당시 이스라엘은 다신교 사회를 살아가고 있었다. 1계명의 타깃 역시 바알과 아세라 등 당대 중동의 여러 신들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바알과 아세라는 그저 고대의 유물로 취급되는 오늘날에는 조금 다른 적용이 필요하다. 기독교 외에도 어디에나 진리가 있다고 말하는 ‘다원주의’, 신보다 인간이 더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말하는 ‘인본주의’가 유일신 사상을 강조한 1계명에 반하는 21세기의 우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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