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안수 실현과 참된 교회공동체
상태바
여성안수 실현과 참된 교회공동체
  • 승인 2004.06.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성은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오늘날 인간사회는 빨리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들이 일상화됐고, 또 미래 사회의 변화는 그 속도와 다양성을 예측하기 어렵게 되어간다. 과학·기술·통신·정보는 물론이지만 그 외의 삶의 태도, 전통, 가치도 변해가고 있다. 남녀 칠세 부동석이란 말은 일곱 살짜리 꼬마 애들만 따로 놀라는 말로 해석되는 세상이다. 어디서나 남녀가 자연스레 같이 일하고 같이 놀고 같이 살아간다. 물론 남녀 성을 구별하여 갈라서 따로 놀기도 하고 따로 일도 한다. 그러나 남녀의 성을 이유로 학교교육이나 직장에서 제도적으로 차별을 하지는 않는다.

종전까지 남성들이 주역이었던 교회 사역도 오늘날처럼 다양한 사회 구성으로 볼 때 더 이상 남성들만으로는 충분히 해 내지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러므로 이제 여성이 교회 내 중요한 일들을 자기의 천직으로 감당하되, 제도적으로 적절한 대우를 받으면서 하기 위하여 안수를 받으려는 문제는 여성들이 학교를 다녀도 되는가라는 질문처럼 더 이상 복잡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성이 직장이나 학교에 가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지 않는 세상에서, 여성 안수를 제도적으로 막는 명백한 성적 차별은 여성들에게는 심각한 인권 유린이다. 특별한 목회 소명이나 지도력이라는 달란트를 받은 여성들을 특정 직종으로부터 차단하는 인권 침해일 뿐 아니라, 여성의 적극적 참여로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회는 평등한 사회 이념이 실현되지 못함은 물론 그 사회의 발전과 진보에 중요한 인력을 낭비하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OECD에 가입한 이후 한국이 국가적 차원에서도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필요한 노동력의 동원은 이미 양질의 교육을 받고 준비된 여성노동력의 최대화라는 것이다.

여성 안수권 승인은 여성의 지위와 권익 증진의 차원도 있지만 그 보다도 달란트 비유처럼, 능력 있고 준비된 여성들이 받은 달란트를 교회와 하나님의 일에 적극 활용하는 문제가 더 중요한 일이다. 남성 사역자들이 안수를 받고 사역하는 것이 안수를 받지 않고 사역하는 것과 다르듯이 여성 사역자들이 안수를 받는다는 것도 매우 중요한 긍정적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첫째, 사역의 범위와 책임적 역할이 넓어진다. 심방 전도사만 해야 되는 줄 알았던 본인이나 교인들의 인식이 예배, 설교, 성례전, 교육, 선교, 상담 등 모든 영역으로 확대될 것이다. 둘째, 담임 목회자나 다른 동역자들과 관계가 교회 밖의 다른 사회처럼 긍정적이고 자연스러운 평등한 관계로 변하고 정책 결정이 원활해진다. 셋째, 여성 교역자들이 경제적으로도 남성 교역자들과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같은 신학교를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여성 졸업생이 막 졸업한 새까만 후배 남성 부목사들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부당한 대우를 현실화 시켜야한다.

몇몇 교단에서 어찌 능력 있는 여성들로 하여금 받은 달란트를 활용하지 못하게 하여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는 죄를 범하게 하겠는가.

예장 통합의 김화자목사(서울신대 졸)는 60년간 투쟁하여 1996년 여성안수권 통과 된 일을 돌이켜보면서 “너무도 당연한 일에 왜 그토록 많은 시간과 정력과 물질을 쏟아 부으며, 왜 그토록 많은 여성들의 은사를 낭비하였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라며, “신이신 예수가 거룩한 여인 어머니의 몸 통하여 이 땅에 오시고 여성차별의 전통을 깨뜨려 평등을 과감히 행동으로 본보여 주시고 남성 베드로보다 먼저 여성들의 입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기의 정체성을 밝히게 하셨다”고 말한다. 사회와 목회현장의 변화에 맞는 건전한 목회문화 수립을 위해 교회내의 민주적 지도력과 평등문화를 활성화해야하는 것은 우리들의 역사적 사명이다.

21세기는 안수 받은 장로, 목회자, 전문가로서의 여성역할, 가정과 교회, 민족의 생명을 돌보고 살리는 치유와 봉사, 평화목회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이다. 권력과 재물을 위해 일류되는 경쟁만 부추기는 교육과 기득권 수호를 위해 줄 서기를 잘할 것을 요구하는 권위적 질서 속에서 병든 사회, 상처받은 교인들을 이한 치유 목회, 평화 목회가 필요하다. 여성은 보조역할, 남성을 기쁘게 하는 역할로 그 역할을 한계 긋는 일을 여성들 스스로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물론 여성들이 미리부터 자신을 엄격하게 훈련하고 준비해야 여성에게 그 자리를 빼앗긴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남성들도 여성과 같이 일하면서 상생 발전하는 기쁨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