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의한 대학교육’ 일념으로 서울과 천안에 4개 대학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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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의한 대학교육’ 일념으로 서울과 천안에 4개 대학 서다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6.11.02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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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백석학원 40년, 복음전파 외길을 걷다

         기독교 정체성 잃지 않고 말씀 순종하니 학교 성장 저절로

       개혁주의생명신학 통해 신앙 인재 양성과 한국교회 개혁 추구

‘기독교대학의 글로벌 리더’를 전면에 내걸고 학원복음화와 기독교 인재 양성에 나서고 있는 백석학원. 1976년 대한복음신학교로 시작해 해마다 3만여 학생들이 기독교 교육을 받는 중부권 명문 종합대학교인 백석대학교와 백석문화대학교, 서울지역에서 문화예술 인재를 양성하는 백석예술대학교와 백석대학교 평생교육신학원(백석신학교) 등 4개 대학으로 발전과 성장을 거듭한 원동력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겠다던 백석학원 설립자 장종현 목사의 굳은 각오는 40년 동안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고, 수많은 대학들이 기독교 정체성을 버리고 일반대학으로 전향할 때, 오히려 ‘기독교대학’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대학을 운영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왔다.

그 결과 한국교회가 놀라고, 교육계가 주목하는 4개 대학이 운영되고 있으며 ‘개혁주의생명신학’을 바탕으로 복음전파의 사명을 캠퍼스 안에서 성취해 나가고 있다. 백석학원 설립 40주년을 맞아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백석학원의 모체 ‘대한복음신학교’

백석학원 40년사를 정리한 백석대학교 임원택 교수(교회사 전공)는 백석학원의 모체인 대한복음신학교가 설립된 1976년 당시 산업화와 대중전도 바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분열과 반목이 심해지는 현상에 주목했다.

임 교수는 “빌리그래함 목사의 서울전도대회 이후 엑스플로 74대회와 77년 민족복음화대성회 등 대중전도 운동이 연이어 일어났던 10년 동안 한국교회는 더 분열하고 갈라졌다”며 “분열의 명분은 신학의 차이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주도권 다툼이 분열의 이유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시대적 상황을 설명했다.

교단이 갈라지고 신학교가 태동하는 분열의 와중에 개혁주의신학의 확산과 교회와 교단의 경쟁적 성장으로 한국교회의 외형은 커졌지만 복음을 바르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후유증이 남았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지켜보던 장종현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전파해 영혼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에 전념하는 사람을 길러내고 싶었다. 그렇게 대한복음신학교가 용산구 동자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됐다.

처음 통신신학으로 시작한 신학교는 소외된 사람, 군인,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면서 신학교육의 강화 및 조직화에 나섰다. 그 결과 1978년 대한예수교장로회 복음총회를 설립하게 됐으며, 이것이 오늘의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총회(구 백석총회)의 시작이 됐다.

신학교는 칼빈주의신학 전통에서 장로정치체제를 취했으며, 복음총회 인준신학인 교단신학교로 발돋움한다. ‘근면 성실 성화’를 교훈으로 출발했지만 1979년도부터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요한복음 8장 32절 말씀을 바탕으로 교훈을 바꾸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40년 외길을 걸어왔다. 


천안시대, 종합대 도약의 발판 마련

1983년 총회신학교는 방배동 시대를 맞이한다. 새 교사의 확보는 총회신학교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장종현 설립자와 그의 가족, 친지들은 사재를 털어 교사 건축을 도왔다.

이러한 노력이 알려지면서 총신고등기술학교 설립 허가가 나게 됐으며, 전문대학에 준하는 과정을 인가받아 지금의 백석예술대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는 백석학원이 단일 신학교육기관에 머문 것이 아니라 신학교를 모판으로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반 대학 과정을 운영하게 됐음을 뜻하기도 했다. 


임원택 교수는 “1976년부터 1985년까지는 복음전파의 터전이 마련된 시기였고, 기초는 복음전파의 사명과 개혁주의신학이었다”고 분석했다. 
학교의 성장과 발판이 마련된 시기는 1986년부터 1995년으로 압축된다. 1992년 총회신학교는 기독신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고 총신기술학교를 독립시켜 서로 발전의 길을 걷고자 했다.

그렇게 1993년 3월 학교법인 백석학원이 설립됐고, 같은 해 11월 천안외국어전문대학설립 인가를 받아 94년 개교하기에 이르렀다. 1993년 12월에는 학교법인 총신학원이 기독신학교 설립 인가를 받았다. 이듬해 3월 기독신학교가 개교했고, 12월에는 기독신학대학으로 승격했다.

4년제 대학에 준하는 각종학교에서 4년제 정규대학으로 승격된 것이다. 1995년 12월 교육부는 기독신학대학을 기독대학교로 개편 인가해줌으로써 종합대학교로 새로운 도약의 길이 활짝 열리게 됐다. 


1994년은 천안 시대가 열린 시기다. 천안 안서동에 천안외국어전문대학교가 개교했고, 기독신학교가 기독신학대학으로 종합대의 기틀을 잡아 천안 캠퍼스는 급속한 확장을 이루기 시작했다. 

건학 25주년 당시 장종현 설립자는 “대학 교육을 통해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건강한 그리스도인을 양성하여 사회로 배출하는 것이 나의 변함없는 목표”라며 “우리나라에 많은 대학들이 있는데, 목사인 내가 무엇 때문에 또 하나의 대학을 더 세워야 하겠나. 나는 ‘복음에 의한 대학교육’이라는 일념을 가지고 학교를 설립했고, 그 일념은 지금도 변함없다”고 밝힌 바 있다. 

4개 대학 기독교 정체성 강화

학교의 발전에는 가속도가 붙었다. 1996년 총신고등기술학교는 총신예술고등기술학교로 교명을 변경했고, 1997년 기독대학교는 천안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 이때 천안대 국제대학원도 개원하면서 석사학위과정을 운영하게 됐다.

1996년 교육부는 기독신학대학원대학교 설립을 인가했고, 1998년 천안외국어전문대학은 천안외국어대학으로 바뀌었다. 2001년에는 총신예술고등기술학교가 총신예술학교가 되면서 전문대학의 이미지를 구축하게 됐다. 


성경 속에서 ‘승리하는 자에게 주는 돌’이라는 뜻을 가진 ‘백석’이 교명으로 사용된 것은 2004년부터다. 2004년 3월 천안외국어대학은 백석대학으로 교명을 바꾸게 된다. 서울 방배동에서 산업체 위탁교육을 실시함에도 불구하고 ‘천안’이라는 명칭이 제약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후 2006년 3월, 천안대학교가 백석대학교로, 백석대학은 백석문화대학이 되었고, 2008년 백석예술대학이 개교했다. 2008년 기독신학교는 백석신학원으로 교명을 변경하는 등 백석학원 산하 4개 대학이 모두 ‘백석’이라는 이름으로 통일성을 갖추게 되었다. 

단순히 교명을 바꾸었다고 대학이 성장하지는 않는다. 장종현 설립자는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했다. 이러한 그의 확신은 40년 간 올곧게 진행된 기독교 교육에서 찾을 수 있다. 

백석학원에 속한 4개 대학 가운데 백석신학교를 제외한 3개 대학은 일반대학으로 비기독교인 비율이 훨씬 높다. 장종현 목사는 복음전파 사명을 위해 학교 제도와 조직, 커리큘럼 강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백석학원에 속한 학교들은 채플을 필수과정으로 만들었고, 전 학기 동안 채플을 이수해야만 졸업할 수 있도록 했다. 기독교 교양 필수과목 평가 방법을 모두 등급제로 운용하면서 ‘기독교의 이해’를 가르쳤다. 백석대와 백석문화대는 학부 담임목사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열린 예배로 초대하고 있다. 

임원택 교수는 “오랫동안 기독교대학이라고 자부해온 대학들이 신앙교육을 위한 교양필수 과목을 줄이고 채플마저 패스제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백석학원에 속한 학교들이 교양필수 과목에 등급제를 시행하고, 신앙교육을 강화해 나간 것은 학교 존립의 명분을 지키겠다는 설립자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종현 목사는 “4년 동안 기독교 관련 과목을 한 과목 이상 필수로 이수하도록 하고 이를 위해 각 학부마다 담임목사를 배정하였으며, 전국의 어느 대학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많은 교목들을 초빙하였습니다. 그 결과 입학할 때는 불신학생 비율이 80% 가량 되지만 졸업할 때는 오히려 80% 이상이 크리스천이 되어서 졸업을 하니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라고 고백한 바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

백석학원 40년은 단순히 기독교 교육의 기틀만을 다진 시간이 아니었다. 기독교 교육과 한국교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자각한 장종현 설립자는 사변화된 신학을 반성하고 개혁주의신학이 성도들의 삶 깊숙히 파고드는 신앙운동을 천명했다. 그것이 바로 ‘개혁주의생명신학’이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은 학원을 넘어 총회와 한국교회를 향해 확산되고 있다.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개혁주의 5대 표어를 바탕으로 7대 실천운동을 향해 나아가는 실천은 세속화와 다원주의, 물량주의에 빠진 한국교회에 경종을 울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무장한 인재 양성과 교회 개혁에 ‘마중물’이 되고 있다. 

임 교수는 “개혁주의생명신학이 정립된 백석학원 40년 중 마지막 10년을 통해 백석학원 교직원들은 자신들이 속한 학교가 진정한 기독교대학이 되도록 하는 방법이 바로 기도성령운동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며 “대학에 속한 교직원과 학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누리면 그 대학이 바로 그리스도의 대학, 즉 기독교대학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종현 목사 역시 “기독교대학이 기독교 정체성을 앞세우지 못한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진리에 따라 새로운 100년을 향해 도약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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