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향목과 눈의 나라 '레바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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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향목과 눈의 나라 '레바논'
  • 승인 2003.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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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메섹 시내를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 유달리 첨탑이 뾰죽하게 솟아 있는 회교 사원을 보았다. 안내서에는 우마이야 모스크로 되어 있었는데, 그곳은 왈리드 1세(무아위야의 손자)가 이슬람의 영광을 과시하기 위해 세운 수니파 모슬렘의 본부 사원이었다.

그런데 원래 이곳에는 시리아 기독교인들의 성지인 세례 요한 교회가 세워져 있었는데, 회교도들의 손에 접수되면서 교회를 헐고 7년 여에 걸쳐 아랍 양식의 모스크로 건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그 모스크 안에는 세례 요한의 머리 무덤이 있다는 것이었다. 전해지는 바로는 세례 요한이 헤로디아의 미움을 사서 목 베임을 당한 후 그 처형의 증거로 그의 목이 당시 다메섹에 주둔하고 있던 수리아 총독에게 보내어졌다가 이곳에 묻혔다는 것이다.

세례 요한의 머리 무덤은 이곳 이외에도 알레포의 우마이야 모스크와 사마리아 입구의 요한 성당에도 있다고 하는데, 그 진위여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회교도들이 교회를 부수고 회교 사원을 지을 때 누구에게선가 세례 요한에 대해 전해 듣게 되었고 유명인사의 유골을 신성시하던 당시의 모슬렘 전통에 따라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그의 무덤은 계속 보존되어졌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순교자는 정녕 죽어서까지 수난을 당하게 되는 것일까? 다메섹의 일정을 대충 마친 후 레바논을 향해 전속력으로 차를 몰게 했다. 레바논이란 말은 ‘희다’를 의미하는 아랍어 라반에서 유래되었는데, 겨울에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산야 전체를 하얗게 덮기 때문에 레바논은 문자 그대로 흰나라, 설국이 된다.

그것이 사실임을 입증이라도 해보이려는 듯 가파른 레바논 산맥을 숨차게 올라갈 즈음 갑자기 앞이 거의 보이질 않을 정도로 싸락눈과 함박눈이 번갈아 쏟아져 내렸다. 삽시간에 도로는 눈 속에 파묻혔고 운전수는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도로 옆에 멈추어 섰다.

지도를 펼쳐 보니 거의 해발 2천m 지점에 와 있었다. 앞에는 레바논 내전 중 드루즈와 크리스챤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던 베카 계곡이 긴 능선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었고 그 너머에는 넓은 평야가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었다.

광기 어린 전란이 할퀴고 간 깊은 상처들과 검붉은 핏자국들을 흔적없이 모두 다 덮어버리려는 듯 그날 레바논 산은 하늘의 모든 눈들을 끌어 모아 산 계곡과 들판에 겹겹이 쌓아 놓고 있었다.

그러나 차창 밖에 쌓이는 눈만을 마냥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투덜거리며 되돌아가자는 운전수에게 어차피 돌아가는 것이 힘들 바에는 계속 레바논 쪽으로 가보자고 했다. 마침 약삭빠른 장사꾼이 다가와서 체인을 사겠느냐고 물었다.

비싼 돈을 주고 체인을 감은 후 아슬아슬하게 곡예 운전을 하면서 기어이 3천 여m의 레바논 산맥을 넘어 레바논 땅에 들어섰다. 국경에서 비자 수속을 밟기 위해 밖으로 나섰을 때 옷은 식은 땀으로 축축이 젖어 있었다.

레바논 땅에 들어서자 그동안 목화솜을 털어내듯이 펑펑 쏟아져 내리던 눈은 소리없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고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태양은 그 밝은 햇살을 땅 위로 마음껏 쏟아 붓기 시작했다. 백향목이 그려진 레바논의 국기는 얼굴 모양새가 조금 비슷한 셈족이 자기 땅에 발을 들여놓은 것을 뜨겁게 환영이라도 하듯 깃발을 펄럭이며 환희의 찬가를 소리높여 부르고 있었다.

우리나라 경기도 넓이만한 레바논은 성경 역사의 주요 활동 무대로 등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때로는 바알 신앙의 본고장으로, 때로는 성전 건축 재료인 백향목의 원산지로 종종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레바논은 전혀 상반된 두 가지 얼굴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것은 레바논이 아랍어를 쓰는 아랍 민족으로 구성된 아랍 국가이면서 실제로는 기독교 국가라는 사실이다. 물론 한때 레바논의 실권자였던 기독교인들이 일부다처주의를 인정하는 회교도들의 다산 정책으로 인구 증가면에서 열세에 놓이게 되면서 정권 수호를 위한 내전으로 돌입하게 되었었지만 여전히 기독교는 레바논 전역에서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레바논 여행에서 느낀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회교 사원들은 초라하고 볼품이 없는 반면 기독교 교회들은 그 외형적인 규모 면에서 매우 크고 화려했다는 것이다. 한편 그것은 필연적으로 레바논 내전에 이스라엘을 끌어들이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지금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는 크게 동과 서로 나뉘어져 있다. 크리스챤들이 대부분 살고 있는 동베이루트는 유럽의 어느 도시에 와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프랑스식 양옥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거리도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져 있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표정도 무척 밝아 보였고 옷차림도 품격과 우아함이 돋보였다.

그 반면에 모슬렘들의 주요 거주지인 서베이루트는 어느 하나 성한 곳을 찾아볼 수 없었고 폭격에 부서져 버린 건물의 잔해들이 흉물처럼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동양의 나폴리라고 불리웠던 페니기아인들의 영원한 도시 베이루트, 누가 이 아름다운 지상낙원을 살벌한 아마겟돈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는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의 후예들은 미움과 살기, 전쟁 이외에는 달리 선택할 것이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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