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기독미술인의 발자취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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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기독미술인의 발자취를 돌아보다
  • 김목화 기자
  • 승인 2015.10.2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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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 ‘한국 현대 기독교미술 50년’ 포럼 열어
▲ 빈민목회를 하며 그들의 일상을 화폭으로 담아 호소했던 화가 이연호 목사의 '이촌동 풍경'(1952).

대한민국에 기독교가 뿌리내린 지 어느덧 130여년이 흘렀다. 하지만 그간의 역사는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여러 전쟁과 이념 갈등 등 혼란 속에 한국교회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며 시련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 고난을 거침으로 한국을 축복과 기적의 땅으로 바꾸어주셨다. 여기에는 한국교회도 한 몫 했다. 한국교회는 사회를 섬기고 돌보며 극심한 가난과 혼란을 잠재우기도 했다.

당시 기독교 미술인들도 한국 사회의 회복을 위해 활발히 움직였다. 해방 후 처음 열린 한국 기독교 교육자 대회 기념전과 YWCA 준공 기념전을 계기로 1966년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가 결성됐다. 그리고 그 후 50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미술인들의 자발적인 헌신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9일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가 한국 현대 기독교미술 50주년을 기념해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심포지엄을 열고, 그동안 한국 사회에 헌신한 기독교미술가들의 발자취를 되새겼다.

이날 포럼에서 미술인협회 최명룡 회장은 “어제를 모르고 오늘을 이야기 할 수 없고, 오늘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일을 예비할 수 없기 때문에 현대 기독교미술을 올바르게 알리고자 포럼을 마련했다”며 “‘한국 현대 기독교미술 50년’이 기독교 미술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기독교미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또 “50년의 광야를 걸어온 기독교 미술인들이 힘들 때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걸어왔기에 오늘의 기독교 미술인들이 있을 수 있었다”며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써의 사명으로 전신갑주를 입은 미술가들의 믿음의 소산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 안동대학교 서성록 교수가 '한국의 현대 기독교미술, 어제와 오늘'의 제목으로 발제를 하고 있다.

한국의 미술인에 의해 기독교 도상이 본격적으로 제작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이날 포럼에서 안동대학교 서성록 교수(안동대학교 미술학과)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는 유교사상이 강력했던 조선시대부터 시작되는데, 기독교 박해가 심했던 터라 기독교 미술이 발전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며 “본격적으로 선교의 문이 열린 한미수교조약(1882년)으로 문화가 개방되면서 선교사들이 내한하고 활동하며 기독교 미술도 활기를 띠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이르면서 한국의 기독교미술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러던 중 궁중화가 김은호(1892-1972) 목사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상을 하면서 기독교 미술은 다시 활력을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의 태동까지 이어진다.

화가목사 이연호 목사는 빈민 목회로 많은 존경을 받는 목회자다. 가난한 사람들, 노인들, 소외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헌신으로 목회하며 그들의 실상을 화폭에 담아 호소했던 이연호 목사는 당시 활동했던 기독교 미술인을 모아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를 창립했다.

서성록 교수는 “한국기독교미술의 확산과 보급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가는 이연호 목사의 글과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 창립, 해외작가 교류, 강의 등을 통해 알 수 있다”며 “한국만의 기독교 미술이 토착화 될 수 있도록 선구적으로 연구하며 방향을 제시한 이연호 목사를 본받아 오늘날 기독 미술인들도 광활한 예술과 신앙의 영역을 열어가자”고 전했다.

한편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는 ‘한국 현대 기독교미술 50년’을 기념해 올해 다양한 행사를 열어왔다. 지난 9월에는 서울 인사동에서 현 회원들 작품을 비롯해 박수근, 이연호, 김윤식 등 초창기 화가들의 작품을 돌아보는 ‘한국기독교미술 50년 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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