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아픔 속 기독교인, “강도 만난 자의 ‘이웃’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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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아픔 속 기독교인, “강도 만난 자의 ‘이웃’ 되어야”
  • 정하라 기자
  • 승인 2015.05.14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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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영성연구소, 춘계 정기학술세미나 ‘시대의 아픔과 기독교 영성’에서 박영식 교수 강연

“예수의 시대나 우리 시대나 여전히 부조리한 시대적 아픔이 존재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에서 내가 그들에게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예수의 물음은 이것이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눅10:36)” 

이해할 수 없는 고난에 마주한 이웃 앞에 기독교인들이 삶으로 전해야 할 메시지가 ‘위로’임을 되새기는 시간이 마련됐다.

기독교영성연구소(소장:조성호 교수) 춘계 정기학술 세미나가 ‘시대의 아픔과 기독교 영성’을 주제로 지난 14일 오후 3시 서울신학대학교 성결의 전당 토마스홀에서 개최됐다.

▲ 기독교영성연구소 춘계 정기학술 세미나가 지난 14일 오후 3시 서울신학대학교 성결의 전당 토마스홀에서 열렸다. 주제강연을 펼친 박영식 교수는 고난 당한 자의 이웃으로서 기독교인의 역할을 설명했다.

이날 주제 강사로 나선 박영식 교수(서울신대 교양학부)는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고통 앞에 기독교인이 형이상학적 사변을 통해 고통의 원인을 들춰내거나 지적하는 것이 아닌, 질문의 방향이 자신에게로 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체르노빌 원전사고, 아이티 대지진, 최근 네팔에서 발생한 대지진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재해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이러한 고난 앞에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성경적 해답을 찾으려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판단을 멈추고, 내가 그들에게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경(눅10:36)에서 강도 만난 자를 도운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처럼, 이웃의 고난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려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어떠한 도움을 베풀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

그는 “재앙과 참사, 그리고 우리 시대의 아픔은 기독교인들에게 도발적이고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며 “악의 본질과 기원에 대한 물음 뿐 아니라 신앙인으로 하여금 새로운 질문에 눈을 뜨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안의 존재도 신의 섭리로 간주하는 ‘신정론’을 바탕으로 이 시대 그리스도인이 마주하는 고난의 의미를 설명했다.

‘신정론’이라는 용어의 창시자인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형이상학적 악이나 물리적 악은 신의 정의와 지혜로움에 따라 부여되거나 시행된 선함과 정의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자연 재해를 비롯해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문제를 모두 신의 정당한 징벌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다.

박 교수는 “우리는 어린아이의 죽음과 같이 무고한 자의 죽음을 볼 때 고통이 신의 징벌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며 또 어처구니없는 관념인지 알 수 있다”며, “이러한 맥락에서 만약 고통을 범죄에 대한 신의 정당한 징벌로 파악한다면, 욥의 고통도 인과응보적 논리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욥기는 오히려 인과응보에 기초한 신학적 판단을 고발한다. 나아가 이러한 논리라면 예수의 죽음도 십자가에 매달았던 유대 지도자들의 관점에 부합하게 신에 의한 정당한 처벌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

박 교수는 “모든 고통이 신의 징벌이라는 신학적 판단은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초기 기독교 신앙고백에 따라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관념이 됐다”고 지적했다.

‘고전 신정론’의 맥락에서 인간의 고통을 선을 이루는 수단이나 방법으로 인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런 낙관론은 성서 속에도 등장하는 피맺힌 울부짖음을 너무 쉽게 간과해 버리고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마주하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영성으로 그는 △침묵과 경청의 영성 △기억과 공감의 영성 △저항과 실천의 영성과 함께, 이 세 가지를 요약하는 것으로 △예수의 영성을 제시했다.

특히 ‘침묵의 영성’에 대해 설명한 박 교수는 “깊은 고통의 신음을 앓고 있는 자는 누군가로부터 듣기 보다는 들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며 “이는 고통당하는 자의 부르짖음에 대해 무덤덤하게 응대하는 과묵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비 앞에서의 침묵”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아파하는 자를 공감하는 ‘기억의 영성’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뤄지길 구하는 행함이 있는 ‘기도의 영성’이 언급됐다.

끝으로 그는 “예수의 정신, 예수의 영, 예수의 얼로 살아가는 자가 곧 그리스도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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