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우드의 포용적 신앙, ‘연세대의 전신’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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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의 포용적 신앙, ‘연세대의 전신’ 세워”
  • 정하라 기자
  • 승인 2015.03.1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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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 내한 130주년 기념학술대회, ‘언더우드의 대학설립과 연희 근대교육’

언더우드 선교사 내한 130주년, 연세대학교 창립 130주년을 맞아 기념학술회의가 13일 연세대 학술정보원 7층에서 ‘언더우드의 대학설립과 연희 근대교육’을 주제로 개최됐다.

▲ 언더우드 내한, 연세대 창립 130주년을 맞아 열린 기념학술회의에서는 언더우드의 포용적, 에큐메니칼 신앙이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적 인재를 양성하는 연세대 창립정신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최재건 교수(연세대)는 “언더우드는 연희전문학교의 설립자이자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틀을 놓은 인물”이라며 “한국의 개신교 선교사들은 이 땅에서 선교활동을 의료와 교육활동으로 그 장을 열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특히 언더우드는 한국에 파송되어 온 개신교 최초의 성직자였지만 내한 당시 선교의 자유가 없었던 우리나라에서 미국 공사관의 교사 자격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최 교수는 “언더우드의 교육 선교활동의 최고 공적은 연세의 전신인 ‘조선기독대학(연희전문)’의 창립”이라며 “선교 초기에 한국이 서구식 교육기관의 불모지인 것을 보고 한국과 한국교회의 발전을 위해 진력해야 할 것은 교육 선교라고 일찍부터 인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 선교의 추진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서울에 학교를 설립하는 것에 있어서도 동료 선교사들과 재한 북장로교 선교회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또 기독교인으로 학생을 제한시켜야 한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언더우드는 비기독교인들에게도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을 관철시켰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 교수는 언더우드를 ‘에큐메니칼한 포용적 신앙인’으로 평가했다.

“언더우드의 삶, 교육, 신앙생활이 모두 경계선을 넘는 것이었고 포용적이었다. 학문적으로는 통섭의 길을 걸었고, 신학적으로도 교파의 장벽을 넘는 초교파적, 에큐메니칼한 신앙생활을 실현했다.”

연희전문학교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국가와 민족, 세계 인류에 공헌하는 인재 양성을 창립정신으로 삼은 것에 대해서도 “만일 기독교 신앙인들만 양성하려 했다면 신학교만 세워도 되었을 것”이라며 “그가 종합대학을 설립한 것은 ‘기독교 한국’을 꿈꾸고 전 민족을 구원할 인물을 길러내기 위함이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언더우드의 정신은 학생 선발 과정뿐만이 아니라 교과과정 전반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김도형 교수(연세대)는 “언더우드는 한국에서의 기독교 사업은 교육 사업이라고 확신했으며, 그가 한국에서 교육 사업을 시작하면서 꿈꾼 것은 ‘대학’의 설립”이라고 강조했다.

선교 초기에도 언더우드는 ‘의과대학이 있는 종합대학’을 설립해야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본인이 속한 북장로회 선교 본부에도 ‘큰 학교(Large school)’, 곧 대학을 세우는 것이 소망이라고 건의했다는 것.

이러한 언더우드의 정신이 연희전문학교가 명실상부한 종합대학의 면모를 갖추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연희전문의 교육은 대학의 교육과정을 그대로 취하고 있었다. 실용적인 학문인 상과는 3년을 수학하게 했으나, 문과, 이과는 4년 과정으로 전문학교의 이름 아래 실제적으로 종합대학을 구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언더우드는 교파에 있어서도 연합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언더우드는 한국에서의 대학 설립은 교파를 넘어 ‘연합(Union)’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교파’를 초월한 ‘연합대학’의 형태를 추진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연희전문학교의 입학생들은 감리교인 50%, 장로교인 20%, 기타 교파 10% 등 기독교인이 많았지만, 비기독교인도 20%나 되었다”며 “교파를 뛰어넘어 연합 정신을 구현했고, 더 나아가 비기독교인들에게도 문화를 개방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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