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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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6.0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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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은 회개로의 초청이다.
▲ 이경직 교수

이집트 왕 파라오는 첫 번째 재앙을 겪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다. 이집트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마술사들도 그리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얻었던 것 같다. 파라오의 문제는 아론의 지팡이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능력을 그의 신하들의 능력과 동일시한데 있었다. 파라오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지만 그 능력을 상대화했다. 그는 하나님을 그의 신하들 중 하나 정도로 여겼다. 바로 여기에 그의 문제가 있었다.

대제국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은 이집트 왕 파라오와 달랐다. 그는 왕궁 지붕에서 거닐면서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단 4:30)라고 거만을 떨었다. 그는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높인 결과로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다(단 4:33). 이런 재앙을 겪은 느부갓네살 왕은 제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였다(단 4:37). 이집트 왕 파라오도 그러해야 했다. 

그러나 매일 아침마다 나일 강을 신으로 예배하는 삶을 살아온 파라오가 자신의 습관과 생각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일 강을 신격화하고 자신을 신의 아들로서 신격화해서 누리던 특권들을 단번에 내려놓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자신의 신하들도 나일 강을 핏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파라오는 큰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그는 그 사실을 자신이 지금껏 믿어왔던 잘못된 신념과 삶에서 벗어나기 싫은 마음을 정당화하는 계기로 삼았을 것이다. 결국 그는 열 가지 재앙을 차례로 겪어야 했다. 그는 나일 강이 핏물로 바뀌는 사건을 보고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이집트 전역에서 이집트 사람들의 장자들과 그들의 짐승들의 첫 새끼들이 모두 피를 흘리며 죽는 일을 보아야만 했다.


우리도 파라오와 같은 사람일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 능력이 우리에게 우리의 이전 삶을 버리라고 요구할 때 그 요구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어떤 식으로든 기존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려고 애쓰기도 하며, 그것을 정당화할 빌미를 찾으려 한다. 이스라엘 백성도 어떤 점에서는 파라오를 닮았다. 파라오가 나일 강의 신에 대한 신앙을 바로 포기하지 못한 것처럼,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이집트를 떠났던 이스라엘 백성도 광야에서 이집트의 삶의 방식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러 간 동안 그들은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찾다가 이집트의 번영을 가져다주었다고 여긴 하피 신을 닮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그들의 여호와라고 예배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손에 들린 지팡이로써 이미 정복하신 나일 강의 신 하피를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려 한 것이 그들의 잘못이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났으며, 그리스도인들을 자신과 동일시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서 엎드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이전에 저질렀던 잘못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삶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집트 왕 파라오는 그러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요술사들도 나일 강을 핏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더 무거워져서 회개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재앙을 내리시는 목적은 피해자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는데 있을 뿐 아니라 가해자 이집트 사람들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로 나아오도록 하는데 있다.


이는 사도 바울이 극적으로 잘 보여준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 1:13)고 고백한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아직 만나지 못했던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에게 가해진 첫 번째 재앙을 통해 가해자의 자리에서 내려와서 피해자였던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겨야 했다. 이는 "모든 왕이 그의 앞에 부복하며 모든 민족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시 72:11)는 말씀의 성취이기도 하다. "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 무릇 주는 위대하사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오니 주만이 하나님이시니이다"(시 86:9-10)는 고백이 모든 백성의 입에서 나와야 한다. 이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마 28:19)는 예수님의 명령을 완수하는 것이다. 비록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 이집트를 떠나지 못했지만 이스라엘 백성 외에도 수많은 민족들이 그 백성과 함께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이집트를 떠났다(출 12:37-38).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은 회개로의 초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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