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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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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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6.0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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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하나님 백성이 겪는 고통의 의미
▲ 이경직 교수

첫 번째 재앙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과 이집트 백성 모두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살았던 고센 지방은 나일 강 하류 동북부 삼각주 평야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하기에 나일 강이 핏물로 바뀌는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타격을 주었다.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예로 착취하지만 않았다면 그들은 그곳에서 나일 강을 신으로 숭배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광야 시절 다베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난다"(민 11:5)고 울었을 때 그들은 나일 강에 대한 신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분의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서는 그들이 신뢰하던 나일 강을 먼저 파괴하셔야 했다. 그들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사랑해서이다. 때로 우리가 겪는 고통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일 수 있다.

이집트 요술사들도 나일 강을 핏물로 바꾸었다(출 7:22). 그러나 그 일은 이집트 사람들을 재앙에서 건지지 못하고 그 재앙을 더할 뿐이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파라오의 신하인 요술사들이 그들을 위해 기적을 베풀어주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나일 강을 핏물로 바꾸는 이집트 요술사들의 행동은 이집트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재앙만 더할 뿐이었다. 이집트 요술사들조차 이집트 사람들의 편이 아니었다.
이집트 요술사들처럼 사탄도 우리를 위한다고 떠들어대지만, 실제로 사탄은 우리를 파괴하는 자이다. 사탄은 하와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것이라고 유혹했다(창 3:4-5). 사탄은 선악과를 먹는 일이 인간에게 유익된 길이라고 속였다. 그러나 사탄은 인간을 생명의 하나님에게 속하기보다 죽음의 존재인 자신에게 속하기를 원했다. 하와는 사탄에게 철저하게 속았다(딤전 2:14). 사탄은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는 자이다(요 8:44).

우리가 하나님 외에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것들은 우상이 되기 싶다. 하나님 말씀과는 다른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사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고자 할 때 사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싶다. 사람들이 우상을 만드는 이유는 그들 자신을 위하는데 있기 때문이다(레 26:1, 신 4:16). 제3자가 볼 때는 속임수가 분명한 데도 사기꾼의 농간에 쉽게 넘어가는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위한 욕심을 크게 내는 사람이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야 1:14-15)

이집트 왕 파라오조차 그의 신하 요술사들의 요술 때문에 속았다. 그는 그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노동력인 이스라엘 백성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요술사들의 요술이 이집트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아론과 같은 기적을 일으켰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그는 요술사들의 기적이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사탄이 욥에게서 자녀들과 재산들을 모두 빼앗았을 때, 사탄이 욥에게 아주 심한 종기가 생기도록 했을 때, 욥의 아내가 그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고 악담을 퍼부었을 때, 욥이 자기가 태어난 날을 저주했을 때(욥 3:1), 사탄이 욥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사탄도 욥도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 때문에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욥을 완전히 버리신 적이 없으시며 욥을 사탄의 소유물로 내어주신 적도 없다. 욥의 신앙을 시험하자는 사탄을 향해 하나님께서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고 하시지만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는 제한조건을 붙이신다(욥 1:12). 사탄이 우리를 괴롭히는 일은 하나님의 주권적 허락 아래 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을" 수 있다(롬 12:12).

이집트 요술사들이 나일 강을 핏물로 만든 사건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 요술사들이 그들에게 고통과 재앙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능력자들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백성은 그들에게 이 재앙을 거두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은 나일 강을 핏물로 만들어 그들의 기반을 흔들어 놓은 모세와 아론, 더 나아가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사건은 일시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앙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사건 때문에 그들이 이집트를 떠나야 할 이유를 찾고, 오직 하나님만이 그들의 주님이시고 왕이심을 고백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 그러하기에 나일 강 재앙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재앙이 아니라 복이다.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12:7)는 고백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입술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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