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하나님이 자녀의 생명을 지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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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하나님이 자녀의 생명을 지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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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6.0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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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장자 이스라엘
▲ 이경직 교수

첫 번째 재앙을 통해 하나님은 이집트 왕 파라오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은 파라오가 하나님을 여호와인줄 믿게 하려는 것이 첫 번째 재앙의 목적이라고 밝히셨다(출 7:17).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출 4:1)고 할까 걱정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고"(출 4:5) 지팡이가 뱀이 되는 기적을 보여주셨다(출 4:4). 그러하기에 여호와는 곧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시다. 첫 번째 재앙을 통해 하나님은 파라오가 비록 절대 권위를 지닌 신으로 행사했지만 그가 압제하고 박해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절대적 후원자가 있음을 밝히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심으로써 그분이 파라오와 전쟁을 벌여야 하는 이유를 밝히시고, 파라오에게 선전포고를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파라오를 향해 "네가 괴롭히던 사람들은 바로 내 백성이다"고 말씀하신다. 파라오에게는 얼마나 두려운 말이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 말일까?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사람들의 압제 때문에 괴로워하여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숨 가쁘게 반응하셨다. 하나님께서 미디안에 있던 모세를 호렙 산 떨기나무 가운데서 부르실 때 "모세야, 모세야"라고 두 번 부르신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고통 앞에서 너무나 다급하셨기 때문에, 모세의 대답을 들을 겨를도 없이 또 한 번 더 그의 이름을 부르셨다.(출 3:4) 엘리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였다(삼상 3:1). 하나님은 아이 사무엘을 세 번이나 부르셨지만 사무엘이 하나님을 찾지 못하자, 매우 다급한 목소리로 "사무엘아, 사무엘아"라고 부르셨다(삼상 3:10).

사도 바울이 회심하기 전에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죽이기 위해 다메섹을 향해 가던 중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그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는 소리가 있었다(행 22:6-7). 바울이 "주님, 누구시니이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는 대답을 들었다.(행 22:8) 교회 공동체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지체들인 그리스도인들을 자신과 동일시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일은 곧 그리스도를 박해하는 일이다. 이처럼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을 박해했을 때 이는 그가 하나님을 박해한 것과 같은 일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자신과 동일시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과 신음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신다. 그리고 그분의 백성과 그분을 가해하는 자에게 진노하시며 보복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의 공동체이자 몸으로 만드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몸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며,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 몸의 지체의 각 부분이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기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인의 고통을 그분의 고통으로 느끼신다(고전 12:26). 이스라엘 백성이 파라오의 압제 아래 고통하고 신음했을 때 우리 하나님도 그 고통을 함께 느끼셨다(출 3:9). 예수님도 우리 죄인들을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시키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라는 무거운 짐 앞에서 짓눌리셔서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셔야 했다(마 26:39). 기름틀을 뜻하는 겟세마네는 예수께서 무거운 맷돌 아래 눌려 그분의 모든 진액을 쏟아놓아야 하는 곳이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은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까지 말씀하셨다(마 26:38).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시키시기 위해 자신을 우리와 동일시하셨으며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사망을 이기셨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집트 왕 파라오에게 "이스라엘은 내 아들 장자라"(출 4:22)고 말씀하실 때 하나님은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의 남자 아기들을 죽인 사건을 기억하신다. "네가 죽인 남자 아기들이 바로 내 첫아들이다."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막음으로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장자임을 부정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집트 사람의 장자들뿐 아니라 그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도 다 죽이셨다(출 4:13; 13;15).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대속하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억울한 피를 흘리게 함으로써 이집트 사람들의 장자들처럼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써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으로 삼으셨다(히 12:33).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난 때는 이집트 사람들이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 모든 장자를 장사하는 때"였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는 해방의 기쁨과, 이집트 사람들에게 있는 죽음의 절망이 교차하는 때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절대왕권을 누렸던 이집트 왕 파라오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않고 파라오를 꺾으시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음으로써 이집트를 떠날 수 있었다(히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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