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을 하나님께"기도하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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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방을 하나님께"기도하는 선교사
  • 승인 2003.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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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고 긴 구름의 나라,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나라 뉴질랜드. ‘마지막 지상낙원’이라는 말처럼 아름다운 자연과 깨끗한 환경이 세계인을 유혹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민이 늘어나면서 이주 교민수만 4만명에 이르고 있다. 다른 백인종 국가에 비해 가장 인종차별이 없다곤 하지만 낯선 땅에 첫 발을 디딘 한국인에겐 어려움이 한두가지가 아닐 터. 그런 한국인들을 위해 집안의 전기 배선공사부터 신앙상담까지 4만 교민의 보호자를 자처하고 나선 청년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뉴질랜드 이민 12년째를 맞고 있는 고광용집사. 지난해에는 한인 최초로 뉴질랜드 국회의원 선거에 지역구 후보로 출마한 바 있으며 현재 ‘크로스에이드’라는 선교단체를 운영하며 인도지역 구제에 나서고 있다.

그의 신앙과 인생이야기를 들어보자.

독실한 신앙인이던 아버지(고의석 장로·선린장로교회)는 “예수님”을 입에 달고 사셨다. 매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고, 관악산 기도굴을 찾아 교회를 세우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기도하는 자는 망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아버지는 3개의 교회를 세우셨고 아들 두명을 목회자로 만드셨다.

이러한 부모님의 믿음은 고집사의 성장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아버지를 본받아 어려운 일이 닥칠때면 기도를 쉬지 않았고 학사장교로 복무하면서 소대원을 교회로 인도하며 복음전파에 힘썼다. 아버지의 기도처럼 그도 목회자를 꿈꿨다. 그러나 그의 길은 다른 곳에 있었다.

학사장교 출신으로 탄탄하게 보장된 한국에서의 미래를 마다하고 그는 낯선 땅 뉴질랜드를 개척지로 정했다. 이민을 떠나기 전 관악산 기도굴로 들어간 그는 7일간 금식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구했다.

“하나님 그곳에서도 제가 쓰임받을 일이 있겠죠. 주님이 허락하시면 저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새로운 신앙의 개척지를 찾아 나가겠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다
낯선 뉴질랜드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현지인 변호사의 도움으로 이국땅에 첫 발을 디딘 불과 두달동안 그는 60여가정의 이민과 정착을 도왔다.

그리고 원주민의 문화와 역사를 공부한 뒤 사업에 뛰어들었다. 해양자원이 풍부한 특성을 살려 멸치를 가공해서 수출하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사업은 보기좋게 실패했다.

이후 병원 청소와 기념품 가게, 모텔 사업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지만 그의 도전은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다. 하나님은 그를 다른 일에 쓰시고자 하셨지만 그는 뜻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황금과 같은 기회가 주어진 것은 6년이 지나서였다.

뉴질랜드텔레콤에서 한국인 직원을 뽑는 다는 공고가 난것이다. 파트타임이었지만 200여명의 한국인이 취업을 위해 몰려들었다. 매니저와 2시간의 인터뷰 끝에 그는 200:1의 경쟁률을 뚫고 뉴질랜드 텔레콤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게 됐다.

텔레콤에서 그가 하는 일은 전화상품을 파는 일. 그는 현지인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독자적인 상품설명 방법을 연구했고 친절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렇게 성실히 일한 덕에 11개월만에 정식직원으로 승격되는 행운을 얻었고, 두차례나 최우수 사원에 선정되면서 현지인들의 신뢰를 얻기 시작했다. 지난해 1월, 회사를 그만두기까지 그는 전화상품을 파는 텔레마게터이자 카운셀러로 살아왔다.

처음 뉴질랜드로 이민와서 당황하던 교민들은 소개에 소개를 받아 고광용집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텔레마게터에겐 1분 1초도 아까운 시간이었지만 그는 교민들을 위해 흔쾌히 상담시간을 할애했다.

교민들은 전화설치와 전기배선부터 가족간에 겪는 어려움까지 고집사에게 호소했고 그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직접 찾아다니며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덕분에 교민들은 ‘고광용’이라는 친절한 청년을 잊지 못했고 그는 한인들의 보호자이자 해결사라는 막중한 책임을 안게 됐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그의 이민인생에 새로운 획을 그은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지난해 6월. 93년부터 정당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해온 고광용집사는 뉴질랜드 소수당인 기독당(Christian Heritage Party)으로부터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출마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기독당은 비록 힘없는 소수당이지만 가정의 회복에 초점을 맞춰 사업을 진행하는 전형적인 기독교정당이었다. 고광용집사는 선뜻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내가 과연 자격이 있을까.’ 그는 반문했다. 그리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나기전처럼 다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찰스 스탠리목사의 집회에 5일동안 참석하면서 금식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네가 순종했느냐”고 물음을 던지셨고, 그는 응답을 얻은 즉시 후보직을 수락했다. 파쿠랑가 지역구 의원으로 출마해 7백76표를 얻었다. 결과는 낙선이었지만 한인교민과 아시아 소수민족들에게 우리도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하나의 사건이었다.

평신도 선교사의 길
지금 고광용집사는 정당활동과 함께 외국에서 온 어학연수생들을 위한 영어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또 선교·구제단체인 크로스에이드를 운영하며 인도등지에 선교사를 지원하고 있다. 학교에서 얻어지는 수입의 십분의 일은 선교비용으로 사용한다.

뉴질랜드에서 7년동안 실패를 경험했던 그는 지금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해하고 있다. 조나단이라는 영어 이름으로 전화를 개설하고 상담을 할 수 있는 것도 모두 하나님이 주신 지혜였다. 텔레콤에서 근무했던 시간동안 하나님은 그에게 많은 이웃을 보내주셨고, 어떻게 선교해야 하는지 노하우를 가르쳐 주셨다.

아들을 목회자로 만들고 싶었던 아버지의 꿈을 늘 마음의 빚으로 간직하고 있던 고집사. 그는 이제 평신도 선교사로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있다.

기독교인이 소수에 불과한 뉴질랜드를 복음화하고 해외선교를 통해 복음의 불모지를 개척해 나가겠다는 것. 또 복지제도 밖에 놓인 홈리스(homeless)들과 노인, 장애인을 위한 사역을 꿈꾸고 있다. 그의 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인들을 위한 기도센터를 만들어 신앙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영적 위로를 주고 싶단다. 올 6월 하나님이 맺어주신 배우자와 천년 가약을 맺는 고광용집사. 한국에서 다시 펼치고픈 사역은 없냐는 질문에 중학교때부터 간직해온 꿈을 조심스레 열어 보인다.

“고급영어 소통이 가능해지면 빌리그래함목사와 같은 유명목회자의 집회를 통역하고 싶어요. 한국인들에게 영어권 영적 지도자의 메세지를 정확히 전달해줄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거에요.” 그는 오늘도 예레미야 1장 5절 말씀을 묵상한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열방의 선지자”를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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