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6개월,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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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6개월,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가야죠”
  • 김동근 기자
  • 승인 2013.11.12 2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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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노’ 위한 NGO를 꿈꾸는 허성재 선교사
▲ 로드리게스 철거민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첫째 줄 가운데 안경쓴 사람이 허성재 선교사. <사진=허성재 선교사 제공>

목회생활로 27년을 바쳤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드린 시간은 그야말로 은혜였다. 15년 전 필리핀을 처음 방문했고, 하나님께서는 선교후원과 기도로 늘 그 땅을 위해 기도하게 하셨다.
그리고 지난 4월 하나님은 그를 필리핀 땅으로 부르셨다.

- 부르신 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일어나는 일을 수용할 수 있는 믿음과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허성재 선교사가 필리핀으로 향하면서 세웠던 기도제목이다. 그가 지금 사역하고 있는 곳은 ‘로드리게스’ 지역. 필리핀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마닐라에서 거주하던 가난한 이들이 쫓겨난 곳이다. 지금도 철거가 진행 중인 곳으로 이미 4만여 가구가 이주했고, 이주할 예정이다.

“철거민촌 교회에서 어린아이 한 명을 만났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아이였죠. 일어서 걸으려고 하니 뒤틀린 다리 때문에 계속 넘어져 온몸이 상처투성이의 어린 아이를 보니 너무나 안타까웠고,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당장 무릎을 꿇고 그 아이를 위해 기도드렸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오직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만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제 앞에 펼쳐졌습니다.”

필리핀 선교사로 파송받기 전 몇 차례 필리핀을 방문하며 어떤 사역을 해야 할지 고민도 했고 계획도 세웠지만, 그를 이끌고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셨다.

한 번은 아픈 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섰다.

▲ 로드리게스 철거민촌 교회의 어린아이들. <사진=허성재 선교사 제공>

“어느 집에 들어갔는데, 전기가 끊겨 캄캄한 채로 살아가는 가정이었습니다. 그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이들이었죠. 아픈 아들과 늙은 노부부 가족을 만나 아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 교회에서 그 아들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얼마 후 그 아버지도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더욱 슬펐던 사실은 그 죽음의 원인이 먹을 것이 없어서, 영양실조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위의 도움이 없으면 노인들은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이 곳의 현실 속에서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렇게 그는 로드리게스철거민촌교회를 돌보는 목회자가 됐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했고, 더 나은 삶을 누리길 바라며 도울 방법을 찾고 있다.

- 내게 있는 것을 네게
허 선교사가 로드리게스에서 문제점으로 느낀 것은 산업시설의 부재다. 산업시설이 있어야 사람들이 일을 하고, 경제활동을 통해 먹고 사는 일이 가능해질 텐데 아예 희망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에 착안해서 그는 일자리 창업을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은 재봉틀을 통해 손수건과 주방 장갑, 발판 등을 만들어 팔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재료 또한 모두 지원해 부담을 갖지 않도록 했다.

“이들의 삶이 변하길 바라며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는데, 일단 반응은 좋아요. 스스로 먹고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니 기뻐하고 있습니다. 우리 돈으로는 얼마 안 되지만 이들의 가정을 꾸리기엔 충분한 돈이에요. 앞으로 컴퓨터를 가져다 간단한 작업들을 가르쳐 직업을 갖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로드리게스 외에 허성재 선교사가 사역을 이어가는 곳은 필리핀의 한 종합병원이다. 그는 병원에서 아픈 이들을 찾아가 기도와 위로를 전하고 있다. 때론 의사들이 그에게 직접 어떤 환자에게 찾아가 기도를 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필리핀에 뿌리를 내린지 얼마 안 되어 필리핀 목회자들의 초청으로 현지 노회를 참석했는데, 그중 한 목회자가 병원사역을 함께하고 싶다고 마음을 전했죠. 그 후 매주 금요일이면 호스피스 병동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백혈병에 걸린 아이, 소아암, 간질환자, 식물인간이 된 아이, 혼수상태에 빠진 아이, 병명을 알 수 없는 아이들까지 꺼져가는 생명줄을 붙잡고 사투를 벌이는 이들을 위해 그는 끊임없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 어린 아이들의 아픔을 보면 뜨거운 눈물이 솟아났고, 간절하게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 코피노 이야기
“언젠가는 아빠가 나를 보러 오시겠지?”

필리핀의 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코피노의 숫자는 약 2만여 명이라고 한다. 코피노는 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일컫는 말로, 필리핀에 있는 대다수의 코피노들이 성매매를 통해 태어났고, 필리핀에 남겨진 상황이다.

코피노들의 어머니, 필리핀 여성들은 생활능력이 없어 대부분 유흥업소에서 종사하거나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 한국의 이름 모를 아버지에 대한 원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한국인으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동정이나 비난이 아닌 객관적인 입장에서 삶의 환경을 개선해주고 의료, 교육 등의 지원을 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다음 세대의 비전을 주고 성장시킨다면 한국과 필리핀은 물론 세계와 소통하는 중요한 외교적 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허 선교사는 이들을 위한 NGO를 꿈꾼다. 그간 케죤시의 하원의원, 공무원들과 관계를 맺어 케죤시 안의 코피노들이 교육, 직업교육, 환경개선 등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다. 또한 주기적인 후원체계를 통해 코피노는 물론 그 가족을 지원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생활비, 코피노 학비, 코피노 어머니 학비, 의료비 등을 지원해 그들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일 뿐만 아니라 한국인으로서 책임져야 할 부분입니다. 앞으로 이런 아픔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알리고, 지원하는 것에 적극 나설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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