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인색 시대, “감사합니다” 외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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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인색 시대, “감사합니다” 외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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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0.29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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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희 목사•영안교회

수확의 계절이다. 강한 바람도 푹푹 찌는 폭염도 이겨낸 오곡백과가 어느 때보다 알차게 결실을 맺었다. 올해는 대풍이라는 소식이 반갑게 느껴진다.

추수감사절은 미국에 정착한 청교도들이 첫 번째 수확기였던 1621년 가을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처음 지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 관습은 이미 오래 전부터 유럽에서 행해졌다고 한다.

한국에서 감사절을 지킨 것은 1904년부터다. 제4회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에서 서경조 장로의 제안으로 한국 교회에서도 감사절을 지키기 시작했다. 1914년 각 교파 선교부의 회의를 거쳐 미국인 선교사가 처음으로 조선에 입국한 날을 기념한 매년 11월 셋째 주일 후 3일을 감사일로 정해 예배를 드리고 감사헌금을 모아 총회 전도국에 보내 전도사업에 쓰기도 했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11월 셋째 주를 추수감사주일로 지키고 있으나 교회별로 추석을 전후로 감사주일을 지정해 성도들과 함께 축하를 나누고 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너희의 소산을 먹을 때 너희에게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했다. 우리는 거저 얻고 먹을 뿐이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편리하도록 주관하고 계신 것이다.

이처럼 모든 만물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먹고 입고 마시는 모든 것,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아주 작은 안타까운 고민에 불과하다. 이미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알아서 하시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그러나 거저 받고 보니 감사를 모른다. 하나의 알곡이 익기 위해 하나님의 손길이 얼마나 가는지 우리는 일부러 헤아리지 않는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이 편리함을 추구할수록 작은 불편에도 불만이 터져 나올 뿐 ‘감사’가 먼저인 적은 없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1860년 미국 노스웨스턴 캠퍼스 인근 미시간호에서 여객선이 침몰해 287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수영선수였던 노스웨스턴 동문 에드워드 스펜서는 땅에서 8백 미터나 떨어진 침몰현장을 16차례나 오가며 17명을 구조해냈다. 그는 탈진해 쓰러져 제대로 회복을 하지 못한 채 남은 생을 휠체어에서 살아야 했다.

그가 사망하기 전 남긴 인터뷰는 충격적이다. “그날 밤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내가 구해준 17명 중 훗날 나를 찾아오거나 내게 감사를 표한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고백했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오늘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002년 서울 119구급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1만2천여 명을 구하거나 병원으로 이송했다. 하지만 이들 중 감사를 표현한 사람은 3%에 불과했다.
“감사합니다.” 인사 한 마디 하기 힘든 세상이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듣기도 참 어려운 세상이다. 세상이 각박할 때 우리는 복음으로 돌아가자.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하자.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있다. 다른 사람의 들보를 들춰내기 바쁜 한국 교회가 오늘부터 매일 하나씩 감사의 일기를 쓰면 어떨까. 성도와 친구, 이웃들에게 감사의 문자를 한 번씩 보내면 어떨까. 하루종일 학업에 직장일에 가사일에 바빴던 가족에게 “고마워”라고 따뜻한 말을 건네면 어떨까. 한 사람의 변화는 세상을 바꾼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변화된 사람이라면 세상을 더 아름답게 풍요롭게 바꿀 수 있다. 모두가 원하는 축복과 넘치는 삶 뿐만 아니라 고난과 궁핍까지도 ‘감사’로 고백하는 믿음이 가득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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