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성호 문화칼럼] 아! 내 안에 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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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성호 문화칼럼] 아! 내 안에 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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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5.2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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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성호의 기독교 문화를 깨운다 (끝)

기독교 신앙과 관련하여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고민이 하나 있다. 바로 천국 문제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고민은 두 가지다.

첫 번째 고민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지옥에 있는데 내가 천국에 간다면, 과연 그곳이 내게 천국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게다가 더 끔찍한 것은 성경 속 거지 나사로 이야기에서 보듯 지옥에서는 천국이 보인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내 자녀가 지옥에서 보고 있다고 한번 상상해보라. 만약 지옥에 가는 것이 한시적이라면, 예컨대 한 백 년 지나고 나서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나마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옥은 영원하다. 이 부분이 내겐 해결되지 않는다.

두 번째 고민은 천국을 묘사한 요한계시록의 비유적인 표현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이 천국의 모습들이 전혀 내게 어떠한 갈망도 감동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독교가 말하는 천국의 모습들은 너무도 빈약하다.

흔히 천국을 사모하라고 한다. 하지만 천국이 지금 이 땅에서는 도저히 머리로 그릴 수 없는 하늘의 법칙에 의거해 이뤄질 상상 밖의 세상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사모할 수 있을까? 한 번도 아이스크림을 먹어본 적이 없는 아이에게, 그래서 아이스크림의 맛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모하라고 말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특히 이 두 번째 고민은 오늘날 우리 교회가 왜 이 모양 이 꼴인지를 잘 설명하는 단초가 된다. 우리 교회가 정말로 천국을 사모한다면,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의 재림’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결코 오늘날 교회가 먹는 욕들을 먹지 않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을 쓴 요한의 마지막 고백처럼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가 우리의 간절한 진짜 기도가 된다면 솔직히 다른 기도 제목들이 뭐가 필요할까? 정말 내일이라도 당장 오실 예수님을 믿고 그렇게 산다면 이 땅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가 무엇이 될까?

과연 우리는 돌아갈 진짜 집 천국을 사모하며 이 세상을 흔히 말하는 ‘나그네’로서 살고 있는가? 나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고민하고 아파하며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렇기에 강단에서는 천국을 외치고 재림을 외쳐도 오로지 이 세상에만 목을 매는 많은 목회자들을 이해한다. 그들 역시도 천국을 사모할 수 없을 테니까. 이 땅에서 하루라도 더 살고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고 싶은 그 마음을 백 번 이해한다.

자,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인가? 어쩌자는 것일까?

나는 이런 나의 고민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그렇기에 감추려고도 않는다. 그냥 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내 이성을 최대한 쓰면서 앞으로 더 고민하고 더욱 애쓸 것이다. 그게 나이고 그게 나의 삶이니까.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가장 정직하게 사는 것……. 이것이 나를 이런 모습으로 만든 하나님께 내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예배이고 그분을 가장 기쁘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니까.

나는 나를 설득시키지 못하는 명제를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내 속에 쑤셔 넣지 않을 것이다. 나는 불확실성이 주는 불안이 아무리 크더라도 가장된 진실로 그 불안을 달래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이렇게 한 걸음씩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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