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권 칼럼] "하수는 고수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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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권 칼럼] "하수는 고수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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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5.2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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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권의 기독교미술 간파하기 (14)
▲ 안드레스 세라노, 오줌 예수(Piss Christ, 152X101, 1987).

“하수는 고수를 모른다.”

필자가 학생들이나 자녀들에게 어려운 것들을 설명을 하면서 종종 쓰는 말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참으로 말귀를 못 알아듣는 이를 대할 때가 있다. 또한 어떤 사실을 보고도 본래의 뜻과 다르게 오해를 하여 아주 난처한 경우에 처할 때도 종종 있다. 게다가 이들은 대개 주변에서 나쁘다는 사람보다는 착하다고 평을 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더욱 당혹스럽다. 우리는 누구나 이러한 경험을 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대부분 자기 입장에서 자기의 수준대로 형성된 관념이 강한 사람에게서 강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처럼 고정된 관념으로 사실을 대하니 고집이 강하다. 이런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는 서로 수준이 비슷해야 한다.

1989년 표현의 자유가 강한 미국에서 대단한 사건이 일어났다. 안드레스 세라노(1950∼)라는 작가의 ‘오줌 예수 Piss Christ’란 작품으로 인하여 국립예술기금을 지급하는 데 제동이 걸렸다. 이는 1980년 이후 이른바 ‘문화 전쟁’이라 불리는 정서의 연장선이다. 문화 전쟁은 일부 종교인들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나 성스럽다고 생각하는 상징물을 모독하거나 모욕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작품이 포함된 전시에 정부의 기금이 지급되었을 경우 이런 작품이 전시되지 않도록 정부에 강력하게 압력을 가했던 것이다. 이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예술의 틀 속에서 새롭게 변화하는 시대사조를 모르고 고정 관념이 빚은 사건이다. 예술은 평생을 연구한 작가가 세상을 보고 새롭게 해석한 언어다. 시대를 앞서가는 작품들을 대할 때면 관객은 나름대로 준비를 해야 한다. 즉, 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공부를 해야 한다. 학생들이 수업을 듣기위해서 사전에 준비를 해야 하는 것처럼 감상자도 공부를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오줌 예수’는 작가가 자신의 오줌을 받은 투명한 통에 십자가 고상을 담그고 촬영한 사진 작품이다. 제목 없이 작품만 대하면 맑고 투명하며 신비스럽기까지 한 색감과 분위기에서 은혜를 받을만할 뿐만 아니라 사진으로 제작하기에 매우 어려운 규모에서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목을 대한 순간 일부 관객의 생각이 달라졌다.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판단한 당시의 상황처럼, 신성 모독으로 본 것이다. 크리스천이며 오랜 동안 성화를 그렸던 경력을 가진 작가는 성스러운 십자가를 모독하려는 의도로 더럽다고 인식하는 배설물인 오줌통에 넣은 것이 아니다. 작가는 오히려 이 시대 크리스천이라 하면서도 예수님의 삶을 본받으려 하지 않고 자신이 만든 우상 속에서 열심히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가식적인 사람들을 배설물 통에 담은 것일 것이다. 절제 없이 방탕하고, 교만하고 탐욕스럽고, 무지하고 게으르고, 의리 없고 비겁하고, 기도하지 않고 걱정 하고, 오늘을 기뻐하지 못하고 내일을 걱정하고, 감사함이 없이 늘 남을 탓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죄 많은 우리들을 위하여 보혈의 십자가로도 부족하여 예수님 스스로 골고다언덕의 십자가를 벗지도 않은 채 배설물 통에 들어가신 것이라고 한다면 작가의 의도를 너무 비약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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