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봄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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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봄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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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1.08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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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중 목사 (꿈의교회)

우리의 인생은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런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 지리산에서 청와대를 거쳐 카이스트까지 이른 주대준 카이스트 부총장의 요셉과 같은 삶이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전과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주대준 박사는 지리산 자락의 경남 산청군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갑작스런 사업 실패로 거제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병치레와 죽음, 그리고 가족 해체로 인해 초등학교 때부터 고학을 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좌절하지 않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의 기적의 삶은 어린 시절 거제도에서 만난 주씨 아저씨의 힘이었다고 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성경 말씀을 본 이후, 그는 예수님을 자신과 성이 같은 주 씨인 줄 알고 믿기 시작했으며, 그 이후로 주님을 인생의 주인이요 구원자로 늘 바로보았다고 합니다. 고학으로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 후 그는 육군 전산장교를 거쳐 청와대 전산실 창설 시 프로그램팀장으로 청와대 근무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는 전산직능 공직자가 승진할 수 있는 한계인 전산실장을 넘어 정보통신처장, 초대 행정본부장, 경호차장으로 승진했습니다. 그는 청와대 경호실 44년 역사상 공학박사 출신으로는 최초로 대통령경호실 차장인 된 것이었습니다. 주 박사는 “경호도 과학이다”란 신념으로 첨단 IT 기술기반의 유비쿼터스 경호시스템을 구축하여 대통령경호실을 오늘날 세계 최고의 경호전문기관으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그는 2개 정부에 걸쳐 경호차장을 역임하며 20년 동안 다섯 분의 대통령을 모신 후 경호실 50년 역사에 전무후무한 진기록을 세우고 지난 2008년 12월, 역대 경호실 간부 중에서 최초 연령정년 퇴직을 했습니다. 청와대 역사상 ‘예수쟁이’라는 이유로 가장 많은 퇴출 위험에 놓였었지만 결국은 청와대 경호실 역사상 처음으로 명예롭게 정년퇴직한 최초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청와대 근무 시절인 1991년 그는 ‘청와대 기독신우회’를 창립하고 퇴직 때까지 회장으로 섬기면서 이 신우회를 청와대의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지금은 카이스트 전산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카이스트 개교 40년 역사상 최초로 정보보호대학원과 사이버보안센터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는 600여명의 카이스트 교수 지성집단에서 부임 7개월 만에 부총장으로 임명되어 탁월한 대외활동과 실적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자기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가정 없이 부모도 없이 성장하는 오늘날 소년소녀가장, 극빈,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좌절하지 않고 꿈과 비전을 품고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적인 인생스토리’를 쓸 수 있다는 믿음과 비전을 주는 멘토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주대준 박사는 하나님이 자신을 이끄셨던 한결같은 법칙은 ‘바라봄’이었다고 하면서 그 바라봄의 법칙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지나온 제 삶을 돌아켜 보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믿음과 집념으로 노력하여 성취해 왔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능력대로가 아니라 나의 믿음대로 내 바라봄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바라봄의 법칙을 이야기하려면, 나는 연약한 인간이고 그 분은 완벽하신 하나님임을 인정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내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이토록 명백해진 터에 달라질 내 모습을 꿈꾼다는 건 전능하신 하나님을 완벽하게 신뢰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주대준 박사처럼 우리 삶에 기적을 일으키는 주체이시고 능력이신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게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미러클 메이커의 삶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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