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 아프리카 복음화 위한 교두보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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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아프리카 복음화 위한 교두보 삼아야
  • 이석훈 기자
  • 승인 2012.09.11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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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르완다공화국 사회·문화이해와 선교방안

장훈태교수(백석대학교 선교학)

아프리카의 심장이나 후투족-투치족간 내전으로 어려움 지속
인구의 80% 기독교인...문화와 가치관 이해하는 일 선행돼야

르완다의 제노사이드 앞에선 장훈태 교수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미지의 땅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인류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어 전 세계인의 관심을 갖는 곳이다. 문명의 저편 검은 대륙이라 불리는 아프리카는 미개의 지역, 에이즈와 빈곤, 각국의 원조에 의해 생명을 유지하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실 아프리카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랜 곳이며 동시에 인류의 발생지라는 것이 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렇지만 아프리카는 조화와 질서, 균형 잡힌 곳인 동시에 평화가 있는 곳이다.

아프리카는 모든 종족들의 정체성과 가치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기회의 땅이다. 아프리카 국가는 유엔 가입 기준으로 53개국이다. 유엔에 미가입한 국가(사하라 아랍민주공화국)를 포함할 경우 54개 국가로 10억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다. 미 독립영토 세 곳은 마요트(Mayotte) 프랑스 자치령, 레위니온(Reunion)프랑스 속령, 세인트헤레나(Saint Helena) 영국 속령 등이다. 그 가운데 르완다는 1994년 종족 분쟁의 상처를 씻어내고 한국을 모델로 삼아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곳이 바로 르완다이다.

- 르완다 종족과 정치
르완다는 아프리카의 심장이라고 부른다. 르완다의 별명은 “아프리카의 스위스, 밀콜린(Mill Collines)으로 천개의 언덕을 가진 나라”를 뜻한다. 르완다와 부룬디 일대에는 여러 부족이 함께 어울려 살았다. 인구의 81%가 넘는 후투(Hutu)족은 과거 노예계층이었고 나일강을 중심으로 하여 생활하는 투치(Tutsi)족 18%는 과거 봉건 지배계층이었다. 트와족(피그미족)은 0.3%, 0.7%는 기타부족에 속한다.

후투족과 투치족간의 평화가 깨진 것은 1899년-1916년까지 독일의 식민통치를 받으면서부터였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패망한 뒤로 벨기에(1916-1962)가 식민통치를 시작하는 투치족의 봉건독재가 시작되었다.

1959년 후투족에 의한 폭동으로 투치족의 정부가 붕괴되었고 이때 많은 수의 사람들이 살해되었다. 1962년 후투족은 투치족을 르완다에서 몰아내면서 자신들의 주도하에 독립이 선포되었고, 투치족에 대한 차별화정책이 실행되었다.

1990년, 투치족은 반정부 단체를 조직하여 후투족의 집권당을 향한 회심의 반격을 시작하였다. 1993년에는 유엔이 개입하여 투치족의 해외저항조직을 포함한 국내복귀를 조건으로 한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1994년 4월 6일. 양 종족간의 평화협약은 균열이 가기 시작하였고, 다음날(7일) 후투족 민병대는 수도 키갈리 중심으로 투치족 색출에 나서면서 피비린내 나는 종족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투치와 후투족의 전쟁으로 80만명 이상 목숨을 잃었다.

현 르완다 대통령 키가베는 국민들에게 계속적인 평화를 강조하면서 어느 누구 종족인가를 묻지 말아 줄 것을 법으로 막아 놓았다. 모든 국민은 르완다인이며 누구나 르완다인으로서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응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국민을 위한 정치, 여성을 위한 정치를 시도함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발전된 국가로 성장시키고 있다.

그리고 르완다는 과거의 상처를 치료하면서 국가발전을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문자 해독률은 64%에 이르고 있으며, 공용어로 프랑스어, 영어, 키냐르완다어를 사용한다. 르완다의 전체언어는 5개이며 그 가운데 토착 언어로 성경이 번역된 것은 3개 언어이다.

- 르완다의 사회· 문화 이해
르완다는 기독교 국가였다. 1994년 4월 7일 내전을 겪었지만 800만 인구 가운데 약 80% 이상이 기독교인이었다. 지금도 르완다인의 대부분은 기독교인이라고 대답한다. 역사적으로 독일과 벨기에의 식민통치로 로마 가톨릭이 지배적이었고, 1930년 영국의 개신교도들이 후투족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개신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했다.

서방국가의 식민통치에도 불구하고 르완다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관습과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왔고, 오랜 기간 기독교 식민지배를 받아 온 결과 기독교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삶의 스타일은 수동적인 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들어 르완다는 명목상 그리스도인의 증가로 복음이 절실히 필요한 곳이 되었다. 종교는 기독교, 이슬람교, 종족 종교, 무종교, 바하이교 등이 있으며, 기독교인구 비율로 볼 때 89.12%가 된다. 그 외에 이슬람은 5.20%, 종족종교는 3.80%, 무종교가 1.70%, 바하이교가 0.18%나 된다. 기독교 교단별 통계로 보면 개신교 30개, 독립교회 22개, 성공회 1. 가톨릭1. 정교회 1, 유사기독교 1개정도가 있다.

르완다는 국민들은 음악과 춤을 좋아하며, 축제를 즐기는 편이다. 축제는 각 종족 혹은 마을 공동체의 문화수준의 차이가 수평적인지 수직적인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리고 르완다인만이 갖고 있는 속담과 사회적 가치관을 통해 전통문화를 계승하거나 마을공동체의 정체성, 정신적 가치체계와 삶의 스타일이 있다.

- 르완다 복음화를 위한 선교
지금, 르완다는 보다 분명한 복음 선포가 시급한 상황이다. 명목상 그리스도인에 대한 변화발전을 시도함으로 아프리카 전 지역의 복음화를 위한 교두보로 삼아야 할 때가 되었다.
 
첫째, 르완다의 복음화를 위한 헌신은 먼 미래가 아닌 지금(Now), 여기에(현장)에서 즉시 실행되어야 한다. 즉 르완다인을 위한 존중, 생명과 인권에 대한 존중의 바탕위에서 복음 사역이 진행되어야 한다.

둘째, 르완다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 곧 생각을 바꾸는 것이 필수다. 그들의 빈곤, 높은 출산율, 에이즈, 질병, 서구의 식민지로 인한 노예계층, 종교사회적 측면에서 샤마니즘, 제국주의와 문화적 상호 관련성 등의 현상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을 버리고 복음신앙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셋째, 끊임없는 복음의 접촉점을 위한 노력이다. 선교사역에서 문명화사역의 오류를 피하고 기독교의 본질을 정확하게 전파하면서 복음화 목표 재정위, 상호소통과 마음을 사로잡는 사역이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선교현장을 총체적으로 해석하고 접근하는 통찰력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 외에도 미래지향적 통찰을 통한 접근방식과 전문 인력 파송(의사, IT전문가)을 통한 인재양성, 목회자 재교육과 신학교육의 체계화로 인한 영적지각과 통찰력, 영적 리더로서의 자질향상에 신경써야 한다. 예배를 통한 치유와 현지인과의 개방성과 파트너십과 삶으로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르완다를 위한 복음 선포는 그들의 사회·문화와 정치적 이슈, 각 공동체의 종교적 삶과 고통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들의 삶으로 음악과 악기, 축제, 속담과 사회적 가치관의 이해는 복음화를 위해 필연적이다. 이를 위해 르완다기독교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와 지역교회의 상황, 기독교와 제노사이드(종족전쟁)의 연구가 복음화를 이루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르완다 목회자들이 르완다 전통시장에서 찬양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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