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제사상, 아버지를 회복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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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제사상, 아버지를 회복시킨다
  • 이덕형 기자
  • 승인 2012.02.21 2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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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가족관계 회복하는 두란노 ‘아버지 학교’

▲ 5주차 아버지학교에서 한 참석자가 자녀와 함께 시간을 담고 있다.(사진제공:두란노아버지학교운동본부)
5주간 교육… 아버지 정체성 회복에 주력
사회 이곳저곳에서 깨어진 가족관계 개선 도모

고1 아들과 중2 딸을 둔 K씨는 요즘들어 고민이 부쩍 늘었다. 아내와 자식과의 관계가 예전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대화가 끊긴 것은 이미 오래 전. 함께 둘러 앉아 식사했던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한 공간에서 이어지는 대화는 직장동료와 나누는 시간에도 한참 못 미친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어디서부터 꼬인것일까? 더 이상 남은 힘이 없을 때까지 일하고 돌아오지만 얽혀버린 가족과의 관계. 그 얽힌 실타레를 풀기 위해 아버지 학교를 찾아가 보았다.

# 자존감 회복이 관건
‘아버지가 되기 위해 나는 과연 얼마나 공부했을까?’ 수십 여 권의 책에서 얻은 지식은 지금 가족의 관계를 회복시켜주고 있는지 자문했을 때 아니라면 맥을 잘못 짚은 것이다.

많은 심리학 전문가들은 깨진 자존감의 원인을 자신을 태어나게 한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더 심각한 점은 일그러진 자존감과 함께 아버지로부터 이어지는 나쁜 영향력이 대에 걸쳐 물려진다는 점이다. 건강한 자존감이 회복되지 않은 가정에서는 술문화, 접대문화, 가정폭력 문화 등이 대를 이어 내려갈 수 있다는 얘기다.

두란노 아버지학교 관계자는 그 답을 깨어진 자존감 회복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자존감이란 자기 존재에 대해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고 그 인격에 대해 스스로 존귀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자존감의 회복이 관계 회복의 시작입니다.”

이 관계자는 크리스천의 경우 자존감의 회복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과거 내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 두 가지 과정을 거쳐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어디로 가야할지 알게 됩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자존감이 회복됩니다.”

# 아버지의 정체성 찾기
1995년 10월부터 시작된 두란노 아버지학교는 깨어진 가족관계 회복에 초점을 둔 프로그램으로 아버지의 정체성과 신분을 되찾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총 5주에 걸쳐 진행되는 아버지학교 1주차에는 나는 내 아버지로부터 어떤 영향력을 받았는지 그리고 지금 나는 자녀들에게 어떤 아버지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며 나의 아버지와 자녀에게 편지를 쓰는 과제도 있다.

2주차에는 음주문화, 폭력문화, 낚시ㆍ골프문화로 대변되는 잘못된 남성문화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3주차에는 남자의 사명은 아버지됨에 있음을 배우는 시간으로 자녀와 일대일 데이트 하는 시간이 과제로 주어진다.

아버지 학교 관계자는 “아버지의 영성이 가족에게 어떤 영향력을 주는지 알아보며 가정 내 제사장이자 지도자로서 바로 설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진행된다”고 밝혔다.

4주차에는 외부로부터 오는 나쁜 영향력과 습관 문화를 끊어내고 성경적인 사명, 영성에 대해 깨닫는 시간을 갖는다. 네 번째 숙제로는 결혼 이전 아내와의 데이트 코스를 돌아보며 ‘아내를 사랑하는 20가지 이유’를 직접 들려주고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어떻게 살지 다짐하는 ‘인생사명서’를 작성하는 시간을 갖는다.

마지막 주에는 아버지를 가정의 선교사이자 제사장으로 보내는 파송식을 갖는다. 특히 남편이 아내의 발을 씻어주는 세족식을 비롯해 온 가족이 함께 음식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변화된 모습을 확인하고 다짐하게 된다.

# 다양한 형태의 교육
기본적인 5주차 프로그램 하에 아버지학교는 대상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진행된다. 그 중 2002년부터 시작해 현재 전국 교정시설 22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교도소 아버지학교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범죄로 인해 깨진 가족관계회복과 무너진 수감자들의 자존감 회복에 중심을 둔 프로그램은 2005년 아태교도소 교정국장포럼에 교도소 행정 모범 프로그램 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6년부터 미혼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예비아버지학교도 열리고 있다. 최근 신세대 장병 중 50% 정도가 깨어진 가정에서 성장한다는 점에 착안해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아버지가 되기 전 미리 예방선교 차원에서 2박 3일간 이루어진다. 그 외 기업, 관공서, 해외를 비롯해 외국인 노동자 및 노숙인을 위한 아버지학교도 진행하고 있다.

# 더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아버지학교가 내세우는 가장 큰 강점은 집단치유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아버지학교 관계자는 “서로 모르는 성인남성 100여 명이 모여 아무에게 말하지 못했던 속 얘기를 5시간씩하는 것만으로도 그 속에서 치유와 이해가 반복적으로 일어나 가정회복에 다가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서로가 서로의 삶을 나눌 때 시너지 효과는 배가 된다고 강조한다. 상담은 자기 고백만으로도 치유효과가 일어나며 자기고백을 통해 자기 인생을 정리해나가는 효과도 가져온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은 서로를 독려하며 깨닫고 결단하며 서로를 통해 용기를 얻을 수 있는 면도 착안하고 있다.

또한, 최근 신세대 아버지 트랜드의 경우 문제가 없어도 더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찾아오는 경향도 있다. 주로 30~40대 아버지의 경우 친구 같은 아버지 더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미리미리 배우러 오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아버지학교는 15년 동안 22여 만 명이 거쳐 갔다.

# 사랑의 힘으로
아버지학교에 참석한 J 씨는 최근 딸에게 편지를 썼다. 퉁명스러운 말투, 단절된 대화, 살갑지 않게 톡톡 쏘는 딸의 말에 섭섭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마음을 그대로 글에 담은 것이다.

편지에는 탯줄을 목에 감고 태어나 제왕절개를 통해 볼 수 있었던 첫 만남에서부터 생후 3주 때 장중첩증으로 힘들어했던 순간순간마다 타들어갔던 심정과 이후 일상 속에 쌓여 왔던 작은 앙금까지 한가득 마음을 글로 종이에 써서 남겼다. 딸의 기분을 살핀 작은 글에서, 자신의 섭섭했던 감정까지,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자상하거나 다정하지 못했던 후회되는 마음까지 편지 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그 날 편지를 발견한 J 씨의 딸은 조용히 편지를 뜯어 읽었고 J씨에게 답장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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