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끝까지’ 말씀 붙들고 인도 섬기기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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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끝까지’ 말씀 붙들고 인도 섬기기 10년
  • 이덕형 기자
  • 승인 2011.08.17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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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의대 한태희 교수의 특별한 휴가

‘진심’ 담아 현지인과 접촉하는 자세 중요
이제 평신도들이 선교의 최전선에 나설 때


7일의 휴가를 위해 1년을 준비하는 사람. 한태희(사랑의교회 안수집사) 박사는 10년을 그렇게 보냈다.

남들은 의료선교라고 하는데 그는 휴가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주고 베풀기 위해 떠났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신앙적으로 더 많은 은혜와 감사를 누리며 쉼을 얻게 된다는 한 박사.

그렇게 그는 휴가 기간 중 이루어지는 의료선교에 대한 생각을 조심스럽게 밝혔다.

# 신앙인으로 살아있음을 느끼다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한태희 박사는 삼성생명과학연구소 분자의학센터장을 겸하고 있어 시간을 10분 단위로 쪼개 쓸 정도로 바쁜 사람이다.

매주일 이어지는 회의와 진료, 강의 등 빡빡한 일정 속에 그 만큼 휴가와 휴식이 절실한 사람도 없다. 그런 그가 왜 휴가로 의료선교를 택했을까.

“선교지에는 신앙적인 도전과 긴장감이 있어 자칫 정체될 수 있는 신앙생활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교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사역들 중에 주어진 달란트로 선교의 근본이 되는 해외선교사역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휴가철마다 의료선교를 떠나게 됩니다.”

한 박사의 신앙의 롤 모델은 오엠선교회 소속이자 사랑의교회 협력 선교사로 인도에서 사역 중인 김세진 선교사다. 김 선교사는 2000년부터 지금까지 9개 교회를 개척했고, 현지인 사역자들을 지도자로 세웠다.

이런 김 선교사가 롤 모델인 이유에 대해 한 박사는 언제나 한결 같음을 꼽았다. 그리고 인구의 대부분이 힌두교와 이슬람 신자들인 인도 솔라포시의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 속에서도 11년 동안 초심을 잃지 않고 여전히 선교의 본질을 추구하며 항상 진지하게 선교 사역에 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더 깊은 인도 내륙으로
그런 김세진 선교사를 따라 한태희 박사 역시 인도로 선교지를 정했다. 인도는 아직까지 신분제도가 남아 있는 곳이다. 공식적으로 카스제도가 폐지된 것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1947년이지만 여전히 인도는 신분제도의 덫에 갇혀 있다.

기본적으로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4계층으로 나눠지는 카스트제도는 다시 직업별로 분류되어 실질적으로 수백 개가 넘는 계층이 존재 한다. 그래서 한 박사에게 인도는 더 안타깝게 다가온다.

“인도에는 최하층민인 수드라에도 속하지 못한 계층인 ‘달리트’가 있습니다. 이들은 사회에서 격리되어 사는 ‘불가촉천민’들입니다. 귀족 계급인 크샤트리아는 이들이 불경하다고해서 근처에도 가지 않습니다.

인구의 15%나 되지만 이들은 국가가 주는 혜택에서 제외되고, 의료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계를 위해 천민들은 더 험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고 자연히 건강 상태는 심각할 정도로 좋지 않습니다.

남성들은 대개 심한 노동으로 근골격계 질환과 피부 감염이 많습니다. 여성들의 경우 가정폭력 및 육체적인 병과 마음의 병이 겹쳐있는 경우가 많은데 50대로 보이는 여성 중에 실제로 30대 후반인 여성도 상당수 있습니다. 진료와 약 처방이 시급한 이들이 저에게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의료선교의 대상입니다.”

인도 마하라쉬트라 주 뭄바이에서 내륙으로 67km 들어가 솔라포(Solapur)에 이르면 인도에서도 힌두문화가 가장 깊은 지역이 기다린다.

최근 테러가 빈발할 정도로 과격 힌두세력이 많은 지역, 이슬람과 힌두의 충돌이 상존하는 곳이다. 선교사역을 하는 동안 아직까지 직접적인 테러의 위협은 없었지만 협박은 언제나 있어왔다.

2004년 솔라포 지역에서 의료선교를 할 당시에는 힌두는 물론이고 이슬람과 불교 쪽에서도 적개심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박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으로 계속 가게 된다고 말했다.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명령이 인도로 향해 있었던 것이다. 감사한 것은 해외 어떤 나라에서도 의료선교팀의 진료를 거부하는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 의료선교는 그들의 닫힌 마음을 여는 ‘생명의 열쇠’가 틀림없었다.

한 박사는 2004년 솔라포시에서 일주일간 진료를 하며 선교의 첫 텃밭을 일구었다. 하지만 의료선교 팀이 한국으로 돌아온 후 김세진 선교사가 한 과격 종교단체로부터 테러를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선교에 앙심을 품은 세력들이 집안으로 침입해 가구를 모두 부숴버린 것이다.

그러나 한 박사는 이런 상황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며 선교를 포기하지 않았다. 주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위협에 굴하지 않는 꾸준한 사랑과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의료선교에 있어서 진료도 중요하지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왔다는 진심을 담아 접촉하는 자세가 먼저입니다. 그래야 그들도 마음의 문을 열어줍니다. 그렇게 조금씩 선교의 영역이 넓혀지고, 여러 해 방문하다보면 서로 알아보고 인간적으로 친해지기도 하지요. 의료선교의 열매가 맺히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그렇게 솔라포시는 변하고 있었다. 한태희 박사의 사랑에 마음을 연 것이다. 작년 6월 김세진 선교사는 솔라포시의 시장, 시의원 등 지도자들을 인솔하고 한국을 방문했다. 이들은 기독교인들의 주도로 변화되고 있는 포항시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그리고 사랑의교회를 찾아와서 예배에도 참석 했다.

# 철저하게 준비하고, 치밀하게 시행한다
의료선교는 준비모임이 필수적이고 중요하다. 7월 출발이 목표일 경우 보통 4월에 팀이 구성되고, 핵심 멤버 구성은 이미 그 이전에 결정된다.

그리고 기도 모임을 시작한다. 현지에서 접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신앙적으로 준비되지 않으면 극복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팀 멤버가 같이 기도하고 말씀을 나눈다.

또한 현지에 가서 같이 묵상할 것을 미리 정하고 큐티에 임한다. 이렇게 말씀을 나누고, 신앙적인 소통과 서로가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팀웍은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한 박사는 해외선교를 다녀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다고 말했다. 의료선교는 한 번 간 지역을 꾸준히 다시 방문하기 때문에 다음 사역에 보강할 점을 찾고, 갔다 와서 평가회와 모임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10년. 지내고 쌓인 시간만큼 의료 선교는 많은 점이 보완 되었고 선교의 열매도 무르익고 있다.

# 해외선교는 계속 되어야 한다.
한국 교회에 바라는 점에 대해 한태희 박사는 성도 개개인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교회는 지도자들만 비판할 일이 아닙니다. 성도 개개인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어느 종교나 다 마찬가지지만 기독교 역사를 보면 사회 속에서 세속적으로 변해가는 것이 어느 시대나 항상 있어 왔던 일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평신도들의 신앙적인 각성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평신도들이 짧은 기간이나마 선교의 최전선에 나서보면 선교의 본질을 깨닫게 되고, 신앙에 도전을 받으며 재충전되어 활력이 넘치게 된다.

그래서 한 박사는 사역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의료선교 사역이 현지 선교를 돕는 강력한 선교사역 가운데 하나이므로 앞으로도 휴가 기간을 이용해 의료선교봉사를 계속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10년의 휴가를 의료선교에 쏟아 부은 한 박사의 삶은 이제 또 새로운 10년의 시작 선상에 섰다. 한태희 박사는 앞으로도 선교의 최전선에서 신앙에 많은 새로운 도전을 받겠지만 재충전된 믿음과 열정으로 해외선교의 막힌 길을 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 2009년 인도를 방문한 사랑의교회 의료선교팀은 어린이 사역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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