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 통일 논의 ‘유연한 상호주의’가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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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 통일 논의 ‘유연한 상호주의’가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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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8.1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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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수 목사 (길벗예수교회)

한국 종교계를 대표하는 통일 관련 연구 논문, 보고서, 선언문 등에서는 한결같이 남북통일의 당위성을 전제하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종교인이나 단체의 이름으로 발표된 수 백 편 이상의 글치고 통일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이때의 통일이란 평화적 통일을 의미한다.

종교인에 의한 통일 논의라면 그 논의 자체가 종교적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종교인에 의한 통일 논의와 일빈 시민 사회에서의 통일 논의, 그리고 정부 차원의 통일 논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종교적 입장에서 남북통일은 실리주의나 실용주의적 판단에 따른 결과라기보다는 의무론적 당위에 가깝다. 대부분의 종교적 가르침 자체가 사랑과 평화, 조화와 일치를 지향하며 그렇게 살라 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교인’에 의한 통일 정책 역시 ‘봉쇄적’이거나 ‘대립적’이기보다는 ‘포용적’인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포용하되 어디까지 포용할 수 있겠는지는 또 다른 논의의 대상이 된다. 통일을 방해하는 세력까지 포용하는지, 그 세력의 희생자만을 포용해야 할 것인지는 어떤 정책을 어떻게 집행하느냐와 관련된 문제이다. 이 때 분명한 것은, 만일 종교적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포용의 대상에 제한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적 차원에서는 원칙적으로 이들 모두를 포용하는 자세로 세밀한 정책을 제안하고 추진해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러 종단에서 자신들의 종교적 가르침을 반영하며 작성한 통일관은 주로 이런 포용주의적 시각을 유지한다.

대다수 종교 연구자들이 지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의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북한 포용 정책은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겠다’는 경직된 상호주의보다는 ‘나중에 받더라도 지금 주겠다’는 유연한 상호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유연한 상호주의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는데 비동시성, 비등가성, 비대칭성이다. 비동시성은 지금 주고 나중에 받을 수 있는 의미이며, 대북지원은 일방적 퍼주기가 아니라 장기적 투자라는 것이다.

비등가성은 가시적인 경제적 지원을 통해 불가시적인 긴장 완화라는 기회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비대칭성이라는 것은 남북 간의 국력을 비교하여 우위에 있는 남한이 더 많은 것을 북한에 지원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미이다.

유연한 상호주의는 종교인이 취할 수 있는 대북정책의 현실적 대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제도화한 종교의 영향력이 점차 취약해져가는 상황에 종교계가 통일 운동과 논의에 나서서 얻는 효과가 얼마나 클지 의심스러운 측면도 있다.

때론 종교가 사회 통합의 추동력이기보다는 사회적 분열과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는 마당에, 종교계에서 벌이는 화해, 일치, 통일 운동에 ‘당신이나 잘하라’는 비판적 메아리가 들려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종교계 통일 논의는 반드시 ‘종교 내 일치’, ‘종교 간 화합’의 정신 위에서 이루어져야 종교적 설득력도 있겠고 사회적 설득력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종교인에 의한 통일 연구와 논의는, 급변하는 정세를 읽고 의식하되, 좁은 의미의 전도가 아닌, 넓고 넓은 의미의 선교를 지향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아가 종교계와 정치계 또는 정부 조직과의 협조 체계도 구축할 필요가 있다. 통일은 종교인이든 정치인이든 행정 관료든 누구에나 적용되는 공통의 목표로 작용할 가능성이 늘 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KCRP 같은 종교연합단체의 역할은 향후 더욱 기대된다.

다만 정부와의 공조가 종교적 타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는 가운데 그렇게 해야 한다.

아울러,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은, 무엇을 하든 그 자세와 정책에 있어서 일치와 화해 운동을 이끌 자격이 있는지, 상대방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이런 것을 보여줄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인에 의한 통일 논의와 평가는 그래서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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