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숲을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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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숲을 가르칩니다"
  • 승인 2002.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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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전 9시 수락산역 1번출구. 삼삼오오 모여 얘기 꽃을 피우고 있는 중학생들 사이로 등산차림을 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였다. 이들은 대부분 60, 70대의 숲 해설가들이다.
숲 해설가 자격은 성공회 대학로교회 지성희신부(성공회 대학로교회, 종로시니어클럽 관장)가 전문직 종사 퇴직자들에게 건전한 노년문화 정착을 위해 준비한 것으로 3개월 과정의 숲 생태 해설가 학교를 수료해야만 자격이 주어진다. 오늘 숲 안내를 해야할 학교는 재현중학교 2학년 7, 8, 9, 10반 1백20여 명의 학생들로 체험학습 과목 수업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수락산 입구로 이동 12팀으로 조를 나누어 드디어 생태학습 시작. 용훈이는 “공기가 시원해서 좋고, 산에 오르면 서울 시내가 다 보일 것 같아 기대된다”면서도 “천둥소리는 무섭다”며 수줍은 웃음을 지었다. 아침부터 잔뜩 구름낀 하늘은 때마침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교사 생활 45년을 마치고 올해부터 본격적 숲 해설가로 나선 이규삼(70)선생님은 “보람된 일을 찾아 나섰다”면서 “비록 오늘 비가 오지만 오늘의 숲 해설 사업은 진행해야 한다”며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 희범이는 “비가 와도 산에 충분히 오를 수 있다”면서 “아직 힘들지도 않아 충분히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구불구불 산 정상을 향해 난 등산길 좌우로는 평소 많이 보았지만 이름을 몰랐던 나무들과 처음 보는 수많은 나무들이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또닥또닥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푸른 나무들에 정신이 팔려 산을 오르다 보니 어느 새 30분이 흘렀다. 특별히 오늘은 ‘수락산 도시 산림 공원 개장식’이 있는 날. 재현중학교 학생들은 의미있는 행사에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비는 억수같이 내리기 시작했고 모두 우산과 우의를 착용했다. 장대비 속에서 약 30분 동안 진행된 행사였지만 학생들은 뜻깊은 자리임을 아는지 모두 자리를 지켰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산림청에서는 학생들에게 따뜻한 차와 과자를 제공했다. 개장식이 끝난 후 본격적인 숲 체험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키가 작은 연노란색의 꽃 앞에 멈춰 섰다. “이건 ‘국수나무’야. 줄기 중간에 철사를 밀어넣으면 국수같은 ‘수’가 나오지. 그 수가 국수같이 생겨 국수나무라고 하는거야” 이종매(여·69)선생님은 능수능란하면서도 마치 친할머니같은 목소리로 설명한다.

설명이 끝나길 기다렸다는듯이 학생들은 “선생님 이거 먹어도 돼요?”라는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또 생강나무 앞에서는 아이들의 코평수가 넓어졌다. 모두 냄새를 맡느라 정신이 없었다. “냄새를 맡아봐. 무슨 냄새가 나?” “무슨 냄새인지 모르겠어요. 레몬 아니에요?” “이건 생강나무야. 생강 알지? 음식만들 때도 들어가잖아”

설명을 듣던 대신이는 “선생님이 아니라 친할머니 같다”며 “말을 듣지 않을 때는 꾸중도 하셨지만 조용히만 하면 자상하게 설명해주셔셔 너무 좋다”고 말했다. 이에 이선생님은 “모두 손자 같아요. 말을 잘 들으면 사탕과 과자도 나눠주는데 너무 귀여워요”라며 맞장구 쳤다. “다리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 한 계속해서 산을 찾겠다”는 이종매선생님은 숲 해설가 외에도 호스피스, 전화상담 봉사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생태학습장에는 엣날에 짚신이 떨어지면 신 바닥에 깔아 썼던 ‘신갈나무’. 지붕을 엮어 굴피집을 만들 수 있는 ‘굴참나무’. 류머티스를 비롯한 여러 증상에 약으로 쓰이는 마디가 없는 ‘전나무’.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는 ‘나이테’. 이 외에도 고리수(골리수), 개암나무, 마취성분이 있는 때죽나무, 산초나무 등 나무 공부에 쏙 빠진 학생들은 나무들과 어울려 마치 숲의 일부분이 된 듯 했다.

학생들과 함께 온 김종수(39·재현중 교사)선생님은 “올해부터 매주 토요일 수락산에서 체험학습 수업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아이들의 반응이 좋아 오히려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받는 수업보다 효과가 크다”고 강조했다.
모두 15개의 코스를 학생들과 함께 돌고 온 지성희신부 또한 “학생들이 숲을 접하면서 심성이 맑아지고 밝아지는 것을 볼 수 있어 좋을 뿐 아니라 퇴직한 노인분들에게 제2의 삶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장이 되어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막 하산을 한 재형이는 콧등에 땀방울이 송송 맺힌 채 양 손에는 무엇인가를 쥐고 숨을 급하게 내쉬고 있었다. “국수나무 줄기인데 너무 신기해 가져왔어요. 집에 가져가 어머니께도 보여줄거에요. 다음에도 꼭 올거에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함께 내려온 친구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뛰어가던 재형이의 등 뒤로 한 줄기 햇볕이 내려쬐기 시작했다.

이승국기자(sklee@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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