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에 빠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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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에 빠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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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5.0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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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인 목사<예장 통합 기획국장>

우리나라 서해안은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드넓은 갯벌을 가지고 있다. 이 갯벌이야말로 ‘바다의 보고’라고 불리는 곳이다. 수많은 해양 생물들의 먹이가 되는 플랑크톤이나 무기질들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서 바다의 건강을 지키고 또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양식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서해안의 기름 유출 사고가 났을 때 전 국민들이 몹시 안타까워하며 기름을 닦아내는 작업에 모두 동참했던 것이다.

우리 서해안은 그 갯벌을 수산업에도 많이 활용하지만, 또 한편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는 일에도 골몰하고 있다. 특별히 갯벌을 이루는 진흙의 성분이 우리들의 피부에 좋아서 여름철에는 진흙 페스티벌을 여는 곳도 있다.

이렇게 우리들에게 좋은 일을 많이 제공하는 갯벌이지만 날마다 변하는 밀물, 썰물 때를 잘 모를 경우 혹은 갯벌에 빠져 익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갯벌은 아주 찐득한 진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번 발이 깊숙이 빠져버리면 여간해서는 혼자 힘으로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은 것이 그 이유이다.

한국 교회는 지금 갯벌에 두 다리가 깊이 빠진 상태와 같다. 한국 교회가 딛고 선 그 곳은 기독교가 잘 자라는 비옥한 토지였던 곳이다. 평신도들의 눈물의 기도, 목회자들의 뼈를 깎는 신학적 노력들이 일구어낸 비옥한 성장의 갯벌이었음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성장의 화려함에 빠지고, 넉넉한 재정의 윤기에 빠지고, 세속 권력과 결탁하는 재미에 빠져 버렸다. 금권 선거, 타락 선거 풍토에 빠지고, 양심선언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의(義)를 자랑하는 일에 빠져 버렸다. 밀물 때는 다가오는데 한국 교회는 이제 어떻게 갯벌에서 발을 뺄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이 진흙 밭에서 빠져 나올 수는 있는 것일까?

‘위기 탈출 넘버원’이라는 꽤 유용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갯벌에 두 다리가 빠졌을 때 빠져나오는 법을 이렇게 말해준다. ‘일단 온몸의 힘을 빼고 뒤로 누워라. 그리고 등을 갯벌에 댄 채로 팔꿈치를 이용하여 뒤로 엉금엉금 나오면 된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갯벌에 빠져 꼼짝 달싹 못하게 된 한국 교회도 이 방법을 써 봐야하지 않을까? 우선 교회들이 온 몸에서 힘을 좀 빼야겠다. ‘좀’이 아니라 사실은 완전히 빼야 한다. 말씀의 권위, 십자가의 권위, 하나님의 사랑 만 남기고 모두 빼야 한다.

십자가의 고난을 거쳐 부활에 이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부활의 영광을 온전히 그리스도께로 돌려야 한다.

예수의 부활까지도 교회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영광과 부요함을 위하여 오용하지는 않았는지 철저하게 회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회개는 골방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회개 기도회’니 ‘목회자 참회 기도회’니 이런 행사, 그만하자. 골방에서 예수와 대면하자.

앞으로 엎드려 폼 잡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뒤로 넘어져 창피한 자세를 취해야 갯벌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교회의 외형적인 모습에 대해서만, 기독인들의 이미지에 대해서만 열을 올리고 자기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지 말고, 뒤로 넘어지는 교회가 되어야겠다. 나의 부족함, 연약함, 더러움을 드러내고 팔꿈치로 간신히 어기적거리면서라도 이 갯벌을 빠져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사실은 그 어떤 누구도 아닌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또 깜빡 잊었다.
예수를 십자가 못 박은 사람들은 이 천년 전 팔레스타인에 살던 유대인이 아니라 21세기를 사는 나 자신임을 깨닫는다. 예수를 못 박았던 내가, 한국 교회를 망신시킨 내가 우리 주님의 부활을 어떻게 맞을 수 있을까? 창피하고, 창피해서 자꾸 숨고만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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