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손잡은 ‘선교사’들 있어 미래가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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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손잡은 ‘선교사’들 있어 미래가 밝다
  • 캄보디아=이현주 기자
  • 승인 2010.07.0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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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선교의 모델 캄보디아를 가다 <하>

▲ 예수전도단이 진행하는 사역 중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이 여성 즉, 어머니의 변화이다. 사진은 여성문자교실 전경.

현지화 향한 협력과 군선교 등 다양한 선교의 보고
예전단, 3년의 리서치 작업 후 본격 선교 결실 맺어

# 감리교 침례교도 연합선교
캄보디아의 연합선교 모델은 다양하다. 한국캄보디아장로교공의회 외에도 미국 남침례교회와 감리교회의 선교 사역이 눈에 띄는 부분이다.

남침례교회는 80년대에 이미 NGO로 소수의 선교사들이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90년대에 교회를 개척해 지금은 캄보디아침례교회연맹을 조직, 정부에 등록을 마쳤다.

감리교회는 현지화를 향한 연합선교의 절차를 잘 밟아나가고 있다. 캄보디아 감리교회는 미국과 싱가폴, 유럽 및 한국 감리교회가 연합하여 하나의 캄보디아 감리교회를 세웠고 신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아직은 외국 감리교회가 본부에 지원을 하고 본부가 일률적으로 사역자들을 후원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지만 목표는 자립이다. 오는 2016년까지 모든 권한과 재산을 캄보디아 지도자에게 이양한다는 결의를 이미 내린 상태다. 여기에 한국 장로교회까지 독립적인 캄보디아 장로교회 완성을 위해 노력하면서 머지않은 미래에 그들 스스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게 하고자 기도하고 있다.

# 군복음화 연합선교

▲ 이재율 선교사
캄보디아를 복음화하려는 노력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이재율 선교사는 복음화의 거점을 ‘군부대’로 잡았다. 한국 군선교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국군중앙교회 내 세워진 ‘세계군선교협력위원회(MSO)’는 우리가 받은 복음의 빚을 갚자는 취지로 해외선교를 시작했다. MSO의 목표는 명확했다. 해외 선교지의 ‘군인’을 복음화하는 것이었다.

이재율 선교사가 캄보디아를 선교지로 정한 것은 2001년 8월 단기선교에 참여하면서 시작됐다. 시골마을의 낯익은 느낌이 좋았다는 이 선교사는 선교를 결심한 후 2005년 캄보디아를 다시 찾았다.
이 선교사는 한국에서 열린 세계기독군인대회때 알게 된 2명의 캄보디안을 만났다. 한 명은 공군 출신 예비역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은 민간인 목사였다. 이들과 대화 후 캄보디아에서 잉글리쉬 캠프를 열기로 하고 첫 번째 사역지로 보병 1여단을 선택했다.

잉글리쉬 캠프는 군부대 안에서 진행된다. 군인과 그 가족들이 참여할 수 있으며 비영어권 기독군인에게 영어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어와 선교라는 두가지 선물을 주는 것이다.

캠프가 열리는 부대에서는 태권도와 컴퓨터, 어린이 교육, 의료, 주부교육, 리더십 프로그램 등 총 9가지의 사역이 진행된다. 국내외 선교지에서 영어와 의료, 컴퓨터 등 사역팀들이 도착해 연합선교를 진행한다. 10~14일 정도 캠프가 진행되고 나면 군부대를 옮겨 또다시 캠프를 연다. 그러나 한 부대에서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듬해 후속사역을 진행하고 이렇게 세 차례 캠프를 진행한 후에 세례를 베푼다. 세례까지 3년의 시간이 걸리지만 결코 조급한 걸음을 하지 않는다.

이 선교사는 현재 캄보디아 내 7개 부대에서 사역 중이다. 2008년 첫 세례를 받은 기갑여단은 43명의 군인과 어린이 33명 등이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 큰 결실이 아닐 수 없었다.

이재율 선교사는 “5년째 이 사역을 진행하다보니 군부대 안에 캠프 여건이 자연스레 조성되기도 한다”며 “술과 도박, 마약 등에 빠진 군인들이 캠프에 참여하고 난 후 책을 읽고 영어 공부를 하며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2005년 1개 부대로 시작한 선교는 해마다 하나씩 늘어났고 이제는 입소문을 타고 군부대에서 먼저 캠프를 유치할 정도가 됐다고 한다.

이 선교사는 2010년부터는 한 단계 선교의 수위를 높여 제자훈련 사역을 진행하고 기독군인 영성훈련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안타까운 것은 캄보디아는 군부대 및 공공기관에 종교시설을 둘 수 없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선교사는 이 역시 사역에는 좋은 점이라고 말했다. 부대 인접마을에 군인교회를 세워 주변까지 복음화를 가능케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재율 선교사가 속한 MSO는 기독군인연합회를 각 나라에 설립하고 군선교 활성화를 유도하는 목표를 안고 있다. 또 이 사역은 베트남과 라오스 등지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 선교사는 “군인이 변화되면 캄보디아도 변화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군복음화 사역에 매진하고 있다”며 “캄보디아를 중심으로 인도차이나 반도의 군인들이 모이는 연합회 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 빈곤퇴치를 통한 복음전파
캄보디아에서 만난 또 다른 선교사는 예수전도단이 파송한 황종철 선교사다. 2001년 캄보디아를 찾은 황 선교사는 3년 동안 ‘리서치’ 작업만 진행했다. 빈곤가정의 현황과 가족문제, 내전주기 등 정확한 캄보디아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첫 번째 선교의 목표였다.

리서치 조사 결과는 심각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가난을 핑계로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았다. 교육을 시키느니 노동력으로 활용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난의 시간을 이겨낸 민족이지만 자력이 아닌 타력으로 위기를 넘어선 탓인지 그들은 ‘미래’를 꿈꾸지 않았다. 당장 자녀를 위해 부모가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그중 ‘엄마’들의 무지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캄보디아 여성부 통계에 의하면 이 나라 여성의 70%가 문맹이다. 킬링필드의 후유증은 아직도 국민들에게 깊게 남아있었다. 50대 국민들은 모두 살해를 했거나 당한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갖고 있었다. 무기력에 빠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 인구의 70%가 절대빈곤층에 해당됐다. 문맹과 빈곤을 퇴치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이 함께 가지 않고서는 복음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나라가 바로 캄보디아다.

황 선교사는 3년간 조사한 리서치 내용을 바탕으로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캄보디아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로 소개된 깜뽑주 츠띨마을을 첫 선교지로 정한 것이다. 선교는 교육과 같이 가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츠띨마을 여성들을 대상으로 글자교육을 시도했다. 그들의 교과서는 요한복음이었고 6개월째 되던 날, 여성들은 읽을 수 있었고 1년 반만에 요한복음을 마스터했다.

여성 즉, 어머니를 교육하고 변화시킨 것은 큰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 엄마가 깨어나자 아이들은 건강해졌고 공부도 할 수 있었다. 예수전도단은 이곳에 사회복지관을 세워 유치원을 운영하고 초등교육과 여성교육을 계속했다. 이어 우물을 파고 보건사업을 진행했으며 집짓기와 정수기보급 등 한 마을을 변화시키는데 총체적인 역량을 집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캄보디아에서 가장 가난했던 마을은 가장 부유하게 변했고 교육수준도 높아졌으며 무엇보다 복음을 통해 삶의 희망을 갖게 됐다.
3년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캄보디아를 정확히 아는데 쏟아부었던 황종철 선교사의 사역은 느리지만 제대로 하는 선교로 이어졌고 그가 캄보디아에 온지 10년 만에 총 6개 마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황 선교사는 “복음이 온전히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선교와 교육, 복지와 개발이 함께 추진될 때 캄보디아 복음화의 속도는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캄보디아의 문이 열린 지 18년째. 캄보디아는 복음의 힘으로 서서히 변화되고 있다. 그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자립선교의 길을 위해 노력하는 선교사들이 있어 캄보디아 복음화의 미래는 밝기만 하다. 우리나라 선교 100년이 가장 아름다운 결실로 기억되듯이 캄보디아 선교 100년을 맞이하는 해에 그들이 받은 복음의 빚을 되갚은 ‘기적’이 일어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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