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괴된 사나이’가 말하는 믿음은?
상태바
영화 ‘파괴된 사나이’가 말하는 믿음은?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0.06.14 19: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딸을 찾기 위한 사투 김명민 등 열연...기독교 소재 손쉽게 다뤄져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십시오!"
"남을 용서하지 못했다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청청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예배당을 울린다. 성도들은 ‘아멘’, ‘아멘’하며 화답한다. 갑자기 목사가 가운을 벗고 강단을 내려온다. 그리고, 성도들을 뒤로한 채 방금 전 자신이 한 설교를 향해 독설을 내뱉는다. 영화 ‘파괴된 사나이’가 그린 첫 장면이다.

▲ 영화 '파괴된 사나이'의 한 장면. 극중 주인공 주영수(김명민 분)는 딸을 잃은 후 믿음을 버리는 목사로 등장한다.
극중 주영수(김명민 분)는 전직 목사다. 8년 전 딸 혜린을 유괴당한 후 신앙을 버렸기 때문이다. 딸이 죽었다고 믿는 그는 냉소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혜린이 여전히 살아있다고 믿는 아내 민경에게 그는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폭력적인 사업가 ‘주사장’이 된 주영수. 그는 여전히 신앙을 간직하며 딸의 행방을 찾고 있는 아내를 향해 “백날 기도하면 죽은 딸이 살아오느냐”고 소리친다. 믿음과 희망의 끈을 놓아버렸다.

그렇게 8년. 어느 날 걸려온 한통의 전화. 유괴범은 13살이 된 혜린이의 생명과 맞바꿀 돈을 요구한다. 영화는 이때부터 딸을 되찾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한 인간, 고독한 아버지의 모습을 그린다.

보통의 유괴영화와 달리 ‘파괴된 사나이’는 유괴 당시가 아닌, 8년 후를 배경으로 했다. 8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 자식을 잃은 고통을 안고 살아온 가족, 유괴된 아이와 유괴범, 사건 담당 형사 등. 등장인물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개개인이 처한 환경에 맞게 적당히 적응해 살고 있다. 마치 잘못 끼운 퍼즐처럼 불편하고 어색한 삶을 충실하게 살아간다.

극중 유괴범 최병철(엄기준 분)은 사소한 이유로 살인을 서슴치 않는 파렴치한이다. 그는 자신의 메니아적 음악에 대한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아이들을 납치하고 쉬이 살인을 저지른다. 주영수 목사의 딸 혜린을 유괴한 후 죽이지 않은 이유는 또 다른 유괴를 위한 것으로 설정했다.

딸의 생사를 확인한 주영수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딸을 되찾는 스토리가 스릴 있고 박진감 넘치게 펼쳐진다. 영화는 유괴범을 아버지의 손으로 직접 심판하는 그의 심정을 관객들이 공감하도록 이끌어 간다. 과연 주인공은 경찰도, 신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딸을 구원할 수 있을까.

영화 ‘파괴된 사나이’는 교회라는 소재를 아주 손쉽게 다룬다. 의대를 포기하고 신학을 통해 목사가 됐지만, 딸을 잃은 후 믿음을 버린 주영수와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신실한 신앙인 민경이 등장한다. 유괴범 엄기준은 교회 오디오 시스템을 설치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이 외에도 영화에는 ‘십자가’와 ‘믿음’이라는 기독교적 신앙의 산물이 곳곳에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믿음’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는다. 그저 영화를 위한 도구로 다뤄졌다. 그것도 ‘가볍게’ 다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주영수 역을 맡은 김명민은 시사회에서 “목사라는 직업은 주인공이 파괴되기 위해, 극의 대비를 주기 위한 직업적 설정일 뿐”이라며 “이 영화를 반기독교 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영화적 측면에서 봐 달라”고 호소했다.

제1회 서울기독교영화제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는 우민호 감독은 “저는 지금 크리스천이 아니”라며 “영화를 만들면서 신에 대해 고민을 깊게 하지는 않았다”고 고백했다. “부모님이 크리스천이고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보고 접했다”고 밝힌 그는 영화에 등장하는 기독교적 이미지와 산물들이 그저 화려한 치장을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실토했다.

영화에서 지나치게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 다소 억지스러운 동기의 잦은 살인은 몰입을 방해했다. 그러나 배우들의 연기력과 풍성한 영화음악, 다양한 영화 기법과 세련된 앵글이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신실한 목사와 타락한 사장, 아버지 사이를 오가며 극단적인 상황을 연기한 김영민을 통한 심리묘사는 자리를 들썩일 정도로 현실적이다. 

영화에는 두가지 방식의 믿음이 등장한다. 8년 동안 보이지 않는 딸이 살아있다고 믿는 아내 민경, 죽었다고 믿는 영수. 믿음에 따라 삶의 방식도 달랐다. 영수는 희망을 잃어 삶은 파괴됐고, 민경은 희망을 놓치 않고 살아간다. 민경의 삶과 영수의 삶은 대비를 이룬다. 어느 쪽이 더 의미 있는 삶일까.

겨자씨만한 믿음도 갖지 못한 주인공. 딸의 실종과 함께 신에 대한 믿음을 버렸던 그는 살아있는 딸을 만나면 어떤 말을 할까.영화는 7월 1일 개봉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