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낯설게 느껴지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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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낯설게 느껴지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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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3.2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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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업 목사<예음교회>

고난 주간이 되었다. 그런데 고난이 낯설게 다가온다. 왠지 교회에는 고난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을 받는다. 안에서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고난을 찾기 어렵고, 밖에서는 고난 없는 교회에 대하여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고난주간은 매년 이맘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런데 고난이 낯설고 고난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셨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셨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정체성에서 한 치도 흔들림이 없으셨고, 이것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공했다. 예수님의 예수님 되심을 용납할 수 없었던 세상은 그 분을 십자가 위에 매달았던 것이다.

고난 주간에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동일한 질문을 다시 받아야 한다. 혹 이 질문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 앞에 무릎 꿇고 다시 대답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백’이 아닌 ‘정답’을 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질문을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무리가 너를 누구라고 하느냐?’. 아마도 이 질문은 우리 모두를 곤혹스럽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고백과 우리의 정답이 다소 거리가 있다는 것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하여 고백할 때 목숨 걸고 말했다. 부들부들 떨며 말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의 삶에서 연결되어 오는 나의 고백이 있는가? 나의 고백을 사람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예수님 때문에 포기한 것들의 목록을 적어보면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도 있겠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에 대한 고백을 가지고 사는 우리가 누구인지, 올바로 고백하는 교회로써 실천하는 삶을 산다면 세상의 반응은 어떠할까?

교회를 향한 비난이 끊이지 않는다. 그 속에는 멸시와 조롱이 가득하다. 그래서 교회가 얼핏 고난당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우리 자신을 똑바로 관찰해야 할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그 고난 속으로 한국 교회가 들어가 있는가? 지금의 교회는 아닌 듯 하다. 한 때, 믿음의 선배들은 한국교회사에서 고난의 고귀한 흔적은 남기셨다. 그 분들은 고난의 질고를 몇 번 넘어 오늘의 한국 교회를 건설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물론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평화는 진심으로 감사할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복 주시길 기뻐하시는 분이시고 선배님들의 피값으로 오늘 우리에게 평안이 주어졌다면 참으로 축복된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누리는 평안이 다른 원인들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정직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만일 이 평안이 믿음의 절개를 잃어버리고 현실과 타협하는 삶의 결과라면 결코 기뻐할 일이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세상 속으로 들어가 그들처럼 살아 누리는 것이라면 감사할 일도 아니다. 이런 평안은 고난보다 더 큰 심판의 서곡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 어디 있겠는가? 고난을 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고백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지불해야할 대가가 있다면 지불해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님 믿으면 복받아야하고, 잘 되어야 하고, 출세해야 한다는 생각이 판을 치는 곳에는 올바른 고백이 설 자리가 없다. 고백에 걸맞는 실천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고 만다.

복음은 필히 고난을 동반하여 왔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말씀은 이제 인기 없는 구호가 되어 간다. 믿음을 정화시키고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던 위대한 말씀이 비호감 언어로 빛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고난주간에 우리는 진짜 고난을 생각해야 한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예수님께서 담당하셨던 진짜 고난, 그 고난 속으로 우리 자신을 집어넣어야 한다. 그래서 고난이 우리 입술에서만 뱅뱅 도는 낯선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가슴 깊은 곳에서 절절히 우러나오는 인격과 삶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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