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나 사명감 먼저 생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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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나 사명감 먼저 생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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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2.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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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목사<서초교회>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책에 이런 글이 나타난다. ‘이런 성직자는 타락한 성직자’라는 것이다. 성직자로서의 의무나 사명에는 별 관심 없이, 자신의 능력이나 소유나 특권에 대해서만 말하려는 성직자는 타락한 성직자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의 종을 섬기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능력이나 소유나 특권을 강조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마르틴 루터가 보기에 그 사람은 타락한 목회자가 되는 셈이다.

종교개혁 당시에 루터가 보기에, 로마 교황은 의무나 사명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특권을 확장하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 당시 로마 교황은 세 가지의 특권을 주장하고 있었다.

첫째로, ‘교회의 권력은 세상의 권력보다 더 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두 번째, 이런 주장을 했다. ‘교황 이외에는 성경을 번역할 권리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의 주장은, 교황 이외에는 교회의 회의를 소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의 교황은 그 세가지 권리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런 권리들을 그대로 다 인정한다고 생각해보자. 교황의 잘못에 대한 그 어떤 조사나 심판이나 처벌은 어렵게 된다. 교황이 원하지 않는 한 교회의 개혁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교황은 추기경들의 투표로 선출되었는데, 추기경들은 어두운 정치적인 과정을 통하여 선출되고 있었다. 그런 추기경들을 통하여 교황이 선출되었으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교황은 신앙과는 관계없는 정치적인 인물일 가능성이 많았다. 그런 교황들에게 신학적인 지식이 없는 것은 물론이요, 교황들 중에는 심지어 무신론자 비슷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런 교황만이 성경을 해석할 권리와 능력을 가진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교황의 특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세속화된 시대에 살아간다. 신앙에 대한 열정이 약화되었고, 또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그런 것에는 큰 관심 없이 살아간다. 올바른 것을 따지다 보면 논쟁과 갈등이 일어나기 때문에 진리에 대한 이야기를 피하려 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니까 옳지 못한 것들이 더 옳은 것처럼 나타나는 경우들이 있다. 거짓된 것들이 진리인 것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분별이 깊지 못한 일반 대중들은 의무나 사명감을 말하는 성직자보다는 대단한 직책이나 능력이나 특권을 강조하는 성직자들을 진정한 성직자라고 생각하며 따르려고 한다. 그럴 듯한 복장을 하고 저 높은 곳에서 대단한 권세를 보이는 성직자가 참된 성직자인 것처럼 생각하려는 서민 대중들이 많았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새삼스럽게 로마 가톨릭 교회를 비판하려는 것인가?  로마 가톨릭보다는 실상은 우리 자신을 향하여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의무나 사명감보다는 소유나 권세에 대한 관심들이 은연중에 확산되어가는 것이 요즘 한국 개신교의 형편이 아닌가? 그런 맥락에서 종교개혁의 시대를 돌이켜 보고 싶은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과 세상의 어떤 특권을 동일시하려는 사고방식이나, 법적인 체제를 강화해 나가는 것을 개혁이라고 생각하려는 사고방식이나, 중심에 자리한 사람들끼리 자꾸 모이다보면 무언가 되려니 하는 사고방식은 마르틴 루터가 보기에 개혁의 대상이 될 듯하다.

대통령이 기독교인이고, 목회자와 장로들이 은연중에 정치권력과 관계 맺을 가능성이 많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목회자로서의 의무나 사명보다는 은연중에 다가올 혜택이나 권력에의 참여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교회 정점에 위치한 교황이 그의 특권에 전념하던 시기에 로마 가톨릭 교회는 종교개혁이라는 파국과 함께 쇄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아들을 심판하여 골고다에 십자가를 세웠던 대제사장들의 권세는 부활의 아침부터는 최악의 이름으로 변하여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와 사명을 생각하며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가신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다. 의무와 사명을 생각하며 걷다가 십자가에 못박히면, 하루 이틀 사흘 째 되는 날에는 부활의 아침이 밝아오게 된다.

루터는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했다. 특권과 소유를 먼저 생각하는 삶으로부터, 의무와 사명을 앞세우는 삶으로의 변화를 먼저 생각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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