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여, 교회를 본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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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여, 교회를 본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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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1.14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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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돈 교수<실천신학대학교대학원>


작년부터 정부에서는 국가 브랜드 위원회를 설치하여서 국가의 품격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 부응하여 사회 전체적으로 우리나라의 품격을 높이자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국가 브랜드는 한 나라에 대한 호감도와 신뢰도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국제 사회에서 국가의 품격이나 이미지를 보여주는 소프트 파워로 이해되고 있다. 즉 개인들에게 개인의 인격이 있듯이 국가에도 국가의 품격인 국격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경제적인 면에서는 세계 13위, 11위를 논할 정도로 상당히 발전한 단계이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줄 수 있는 나라로 성장한 유일한 국가로, 그리고 모범적인 사례로 언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브랜드 순위에서는 세계 50개 국가에서 33위를 하는 하위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과연 무엇이 문제이기에 이러한 결과가 나오는 것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북한과의 대치 상황, 국제 사회에서의 기여 부족, 그리고 정치 불안과 과격한 시위 문화 등을 언론은 꼽고 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것은 국제 사회에 대한 기여도가 적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원조 받는 것을 당연히 여겨왔고 다른 나라에 원조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을 안 했다. 그것은 우리가 세계를 볼 수 있는 넓은 시야가 없었기 때문이고 또 고립된 반도에 존재하다 보니 세계를 볼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미 이전부터 세계의 빈곤 문제에 눈을 뜨고 사적으로나마 원조를 시작하였다. 현재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구호단체인 월드비전, 국제기아대책본부, 굿네이버스, 컴패션, 해비타트 등이 모두 기독교 배경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단체들이다. 기독교적인 정신이 없었다면 생겨나기도 어려웠을 단체들이고 한국 교회의 전폭적인 지지가 아니고서는 그렇게 성장할 수 없었던 단체들이다. 이러한 단체들이 한국 교회의 도움으로 성장하여 이제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구호단체가 된 것이다.

또한 한국 교회는 1만6천여의 해외 선교사들을 세계 각처에 파송하고 있다. 이들은 보통 제3세계의 가난한 나라들에 있으며 단순한 전도가 아니라 구호를 통한 원조에 그 무게가 있다. 교회는 바로 이러한 선교사들을 통해서 가난한 나라들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들을 돕는 일에 일찍부터 동참해 온 것이다.

한국 교회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네팔의 산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선물을 준비하고, 파라과이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학교를 지어주기 위해서 헌금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북한을 탈출하여 제3국을 떠돌고 있는 우리 동포들을 구출하기 위해 헌금을 하고 그들을 어느 주일 오후에 대면하여서 함께 기도하고 눈물 흘리기도 한다. 때론 케냐의 쓰레기더미를 헤매고 다니던 아이들이 멋진 합창단을 구성하여 부르는 천상의 노래를 이 땅, 대한민국에서 함께 듣기도 한다. 이렇게 세계를 보고 그 가난한 자들에 대해서 빚진 마음을 갖게 되는 진정한 세계화를 한국 교회는 일찍 시작했던 것이다.

아쉬운 면이 있다면 한국 교회가 이것을 그냥 선교나 전도라는 용어로 설명해왔기 때문에 우리 교인들이 이러한 것을 사랑, 정의, 평화와 같은 보편적 가치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좀 더 실제적으로는 이러한 가치에 근거한 세계화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이러한 활동은 한국 사회보다 훨씬 일찍 이루어졌고 그 어느 나라보다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는 2000년 이후에 빈곤 퇴치를 새천년의 목표(Millenium Goal)로 선정하여 제3세계의 가난한 자들을 여러 모양으로 돕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도 이러한 영향력 하에서 생겨난 것이고 다보스 회의의 다양한 구제방침들도 이러한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빈곤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의 폭발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국격을 말할 때 바로 이러한 세계적 책임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이러한 일에 서툴고 국가의 주는 원조 역시 다른 나라에 비하여 아주 저조한 수준이다. 그러나 그간 이러한 일을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온 한국 교회가 있으므로 대한민국은 이러한 교회의 상상력을 배우라고 자신 있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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