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93강) 열 므나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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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93강) 열 므나의 비유
  • 승인 2008.03.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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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제93강

열 므나의 비유; 이익을 남기는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삭개오 사건에 이어 소개되는 이야기는 “열 므나의 비유”(눅 19:11-27)로 알려진 비유이다. 이 비유는 그 내용에 있어서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마 25:14-30)와 유사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또한 다른 점도 발견된다.



 

유사점이란 주인이 그 재산을 종들에게 나눠주고 먼 나라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와서는 그 사이에 종들이 수행한 장사(trade)의 결과를 평가하는 것이다. 차이점은, 첫째로 누가복음에서는 주인과 종의 관계 외에 주인의 왕 됨을 반대하는 자들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는 것이고, 둘째로 마태복음에서는 세 명의 종들에게 각기 달리 달란트를 맡겼으나, 누가복음에서는 열 명의 종들에게 공평하게 한 므나 씩 맡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들의 행위에 대한 평가에는 마태복음과 마찬가지로 세 명이 등장한다.

 

첫 번째 차이점에 대하여 학자들은 누가복음의 비유에 유대 나라의 역사적 사실이 삽입된 것으로 풀이한다. 헤롯 대왕이 죽은 후 그 아들 아켈라오(Archelaus)가 유대 지방의 분봉 왕이 되고자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재가를 얻기 위해 로마로 떠났는데, 이를 반대하는 유대 민족의 지도자 50명이 뒤따라 로마로 가서 폭군 아켈라오의 임명을 철회해 주도록 황제에게 요청하였다.


 

그러나 로마 황제는 약간의 고민 끝에 끝내 아켈라오의 손을 들어주어 그를 유대 분봉 왕으로 임명하게 되었고, 로마에서 돌아온 아켈라오는 자신을 반대했던 유대 민족의 지도자들에게 무서운 복수를 가하여 처단하게 되었고,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 되었다.

 

그리하여 아켈라오는 이두매, 유대, 사마리아의 분봉 왕이 되었으나 얼마 후에 그 폭정으로 인해 폐위되었고, 이 후부터는 로마 총독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으며, 그 중 다섯 번째 총독이 본디오 빌라도였던 것이다(요세푸스, 『유대전쟁사』, 2.80).

 

아마도 누가가 이 역사적 사건을 비유 속에 포함시킨 이유는 눅 19:11에서 발견된다. 즉 누가 당대의 사람들은 임박한 종말에 대한 간절한 기대를 간직하고 있었는데, 임박한 종말의 예언을 들은 세대가 끝날 즈음에도 여전히 약속된 종말이 임하지 않게 되자 이로 인한 동요가 있었던 것이고, 누가복음은 이 같은 종말의 지연으로 인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한 의도를 가졌는데, 눅 19:11이 그 한 증거인 것이다.


 

요컨대 종말은 그들 세대 내에 당장 임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구속사 계획에 따라 지연된 것이란 설명이다(참고, 눅 16:16). 이런 맥락에서 귀인(貴人)의 귀환(15절)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약속에 대한 암시로 볼 수 있고, 또한 그를 반대하는 자들에 대한 처벌(27절)은 주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에 대한 심판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열 므나의 비유는 누가복음에 기록된 세 개의 청지기 비유 중 마지막 비유로 등장한다. 첫째는 지혜롭고 신실한 청지기 비유(눅 12:41-48)이고, 둘째는 불의한 청지기 비유(눅 16:1-13)이다. 물론 청지기란 용어가 사용되지 않기에 이를 부정할 수도 있겠으나, 주인이 그 재산을 종들에게 맡겨 장사하도록 분부하고 이익이 남긴 종을 칭찬하고 한 므나 그대로 묻어둔 종을 벌한다는 내용을 고려할 때 청지기 비유라고 간주할 수 있도록 충분한 근거가 존재한다.


 

앞서의 두 청지기 비유와의 차이점이란 청지기는 단지 재산을 관리하는 차원만이 아니라 그것을 적극 활용하여 이익을 남겨야 한다는 점이다.

백석대 / 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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