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87) 하나님 나라의 현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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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87) 하나님 나라의 현재와 미래
  • 승인 2008.01.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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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현재와 미래; 구원 역사의 성취와 완성의 좌표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구속 드라마의 마지막 장(章), 즉 역사의 마지막 순간을 살고 있다고 믿었다. 유대 신학에서, 왕국의 도래, 메시야의 강림, 의인과 악인의 부활, 성령의 은사 등은 모두 말세에 일어날 종말론적 사건들이었다. 이런 믿음을 근거로 제자들은 주님이 왕국의 도착을 선포했을 때 그를 메시야로 환호하였고, 그의 부활의 증인이 되었으며 성령의 선물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역사의 마지막을 살고 있다고 믿으며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의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살전 4:13-5:11).

이런 맥락에서 누가복음 17장 20-21절은 누가신학의 종말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본문이다. 일찍이 이 주제와 관련하여 독일의 신학자 한스 콘첼만(Hans Conzelmann)은 누가복음 16장 16절을 중심으로 하여 구속사를 구약, 신약, 교회 시대로 구분 지으며 “연기된 종말론”을 주창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의 주장의 출발은, 누가복음의 배경이 되는 누가공동체가 당면한 문제 중 하나이자 누가복음의 저술의 목적 중 하나가 임박한 종말의 지연으로 야기된 문제였다는 것이다. 곧 오리라던 주님의 재림이 지체되자 이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는 누가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가가 마련한 처방이 바로 약속된 종말은 구속사적 계획에 따라 곧 다가올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예정되어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까닭에 누가복음에는 임박한 종말에 대한 언급이 생략되어 나타나고, 연기된 종말을 시사하는 구절이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눅 19:11, 참고 눅 9:23).


물론 누가복음의 종말론에 대한 콘첼만의 주장이 전적으로 수용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재림 지연의 현실에 직면하여 종말론을 구속사로 대치시켰으며, 또한 눅 17:20-21이 시사하고 있는 실현된 종말론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된 종말론은 누가복음에만 등장하는 눅 9:23, 19:11의 증거들과, 누가공동체 내의 핍박과 환란의 부재를 알리는 눅 3:10-14과 구제 관련 자료들(눅 11:41, 14:13, 21, 14:33)을 함께 참작할 때,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 중 하나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말의 지연을 인정한다 해서 그것이 곧 종말론의 이중 구조, 즉 실현된 종말론과 미래적 종말론 사상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복음서를 포함하여 신약성경 전체가 제시하고 있는 종말론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이미와 아직”(already - not yet) 사상이다. 종말과 동일시되는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도래와 함께 이미 시작되었으며, 귀신을 추방하고 온갖 질병을 치유하였던 주님의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통하여 “이미” 현실로 이 땅에 선을 보이게 되었다(눅 11:20, 7:22; 참고 마 4:23-25). 오늘의 본문인 눅 17:20-21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 다시 말하면 실현된 종말론을 가리키는 증거 본문이 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초림 이후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완성된 형태가 아님으로 여전히 미래의 궁극적인 완성을 기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3장에 기록된 겨자 씨 비유와 가루 서말 속에 담긴 누룩의 비유가 이를 잘 증거해 주고 있다(마 13:31-33). 따라서 마지막 심판을 거쳐 마침내 완성될 종말, 곧 하나님의 나라를 여전히 우리는 기다리는 것이다(마 13: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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