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86) 무익한 종과 나병 환자 치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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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86) 무익한 종과 나병 환자 치유 이야기
  • 승인 2008.01.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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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익한 종과 나병 환자 치유 이야기; ‘사례’를 잃어버린 까닭




공동체 내의 소자 하나를 실족케 하는 행위에 대한 경고는 공관복음 모두에서 발견된다(마 18:6-7; 막 9:42; 눅 17:1-4). 여기서 말하는 소자는 우선 제자들을 가리키며, 특별히 공동체 내에서 연약한 지체를 일컫는데, 이를테면 누가복음에서는 가난한 자와 맹인 등의 장애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눅 4:18; 14:13, 21). 그들은 그들 자신이 겪고 있는 궁핍과 선천적 장애로 인해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상처받을 수 있고, 그로 인해 실족할 가능성도 많은 것이다. 따라서 그들 보다 나은 형편과 조건 아래 있는 이들은 마땅히 이러한 연약한 형제나 자매들을 돌봄으로써 공동체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연약한 지체를 돕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따라서 이를 위하여 더 큰 믿음이 요청되는 것이다(눅 17:5-6).

이후 누가복음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잇달아 소개된다. 하나는 무익한 종의 비유(눅 17:7-10)로 알려진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열 명의 나병환자의 치유(눅 17:11-19)이다. 외견상 두 이야기에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주목할 때 “사례”(감사)라는 말이 두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된 것이 발견된다(눅 17:9, 16). 물론 문자적으로 하나는 명사(charis, 9절), 다른 하나는 동사(eucharisteo, 16절)로서 동일한 단어는 아니나, 그 어근이 같음으로 한글 개역에서는 같은 단어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면 과연 저자 누가는 성령의 감동을 입어 두 다른 이야기에서 같은 어근의 단어를 사용함으로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였던 것일까?


첫 번째 무익한 종의 비유는 어떤 하인이 양을 치거나 밭에서 일하는 것과 같은, 당일 그에게 할당된 업무를 다 이행하고 귀가하였을 때 편히 앉아 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루 일과를 끝내고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주인의 식사수발과도 같은 의무를 수행해야만 함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 비유는 종이 위탁 받은 모든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하여 그에 상응한 보수나 대가가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눅 17:9).


두 번째 나병환자 치유 이야기는 열 명의 나병환자가 예수님의 기적적인 치유사역을 통하여 제사장에게 가는 동안 그 질병이 나음을 입었으나, 그 중 오직 한 명의 이방인, 즉 사마리아 사람만이 돌아와 감사하였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눅 17:16-17). 이 사실을 안 주님이 탄식하며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18절)고 물으신 것은 나머지 아홉 명의 나병환자 역시 돌아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마땅함을 가리킨다.


이제 이 두 이야기를 “사례”(감사)란 catch word를 통하여 연결시켜 이해할 때, 우리는 다음의 교훈을 얻게 된다. 종으로서 성도가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해 행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은 사람에게 감사할 필요가 없지만, 다시 말하면 그 일들은 모두 당연한 일로써 그 어떤 보상이나 대가를 요구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사랑하는 백성을 위해 행하신 모든 일에 대하여 사람은 반드시 감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이를 역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즉 우리가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한 일에 대해서는 보상이나 대가를 요청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에 대하여는 감사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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