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82) 철저한 충성심과 냉정하게 계산된 준비
상태바
누가복음(82) 철저한 충성심과 냉정하게 계산된 준비
  • 승인 2007.12.20 1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자 됨의 조건: 철저한 충성심과 냉정하게 계산된 준비






주님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위에 있고(참고, 눅 9:51), 수많은 무리들이 그를 좇고 있다(눅 14:25). 이들 대부분은 주님의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이 메시야의 승리의 행진이며, 마침내 주님이 권좌에 오를 때 이를 함께 환영하고자 하는 무리들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매우 냉정한 태도로 그들이 가진 환상을 깨뜨리며, 예루살렘에서의 주님의 사역은 매우 위험한 과업으로써,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라 철저한 충성심과 냉정하게 계산된 불요불굴의 의지를 가진 지원자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무리를 향한 주님의 교훈 중 ‘부모를 미워하라’는 말씀은(눅 14:26) 문자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유대적 사고에 있어서 극단적인 대조는 일상적이었다 - 빛과 어두움, 참과 거짓, 사랑과 미움 등. 이 둘 가운데 중간적 위치에 머무는 타협적 태도는 용납될 수 없었다. ‘내가 이것보다 저것을 더 좋아한다.’는 문장을 유대적 사고로 전환하여 말하면, ‘내가 이것을 좋아하고 저것을 미워한다.’이다(참고, 창 29:30-31; 신 21:15-17). 그리하여 주님을 따르는 추종자들에게 그 가족을 미워하라는 말의 의미는 가족을 두 번째 우선순위로 간주하라는 뜻이며, 아울러 가족과의 관계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철저한 헌신을 방해해서는 안 될 것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누가는 오히려 거친 유대적 표현을 그대로 간직한 반면에, 마태는 그 공동체 내의 이방인 독자들에게 이해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 설명하고 있다(마 10: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




십자가 형벌은 정치범들을 제거하는 로마정부의 처형 방법으로써 당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십자가를 지라는 주님의 말씀(눅 14:27)은 누가복음에서 로마 정부와의 직접적 충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앞서 누가는 이미 십자가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풀어 설명하였기 때문이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눅 9:23; 비교, 막 8:34) 그렇다면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십자가를 질 때 당하게 될 것과 동일한 고통과 모욕을 미리 각오하고 주님을 따라야 함을 가리키는 것이다.




제자가 됨에 이러한 고통과 수치가 수반될 수 있으므로,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망대를 건축하는 사업이나 다른 나라와 전쟁을 치를 때에 필요한 그러한 철저한 준비와 계산을 염두에 둔 채 주님을 따라야만 할 것이다. 아무도 홍수 같은 열정만 갖고 주님을 따라서는 안 되고, 냉철한 사고와 판단과 함께 자신의 모든 소유를 포기할 각오를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눅 14:33). 이 기사 앞에 나온 만찬의 비유에서 주인의 초대를 미리 받아놓고도 응하지 않음으로써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인 손님이 마침내 배척되었듯이(눅 14:24), 열의와 준비가 부족한 미적지근한 제자들 역시, 맛 잃은 소금이 버림 받는 것처럼(눅 14:34-35; 마 5:13), 마침내 버림 받을 수도 있음을 주님은 경고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주님은 장차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추종자들을 설득하여 단념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준비와 열의가 부족한 제자들이 장차 당하게 될 결과를 미리 언급함으로써 반신반의하며 머뭇거리는 자들을 일깨우고자 하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