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던 만나가 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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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던 만나가 그치다
  • 승인 2005.10.1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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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승교수<서울신대 구약학>




만나가 처음 내린 시기는 출애굽한 후 한달이 되던 때였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은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광야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사막 한가운데에서 큰 위기를 만났다. 애굽에서 준비해 온 모든 양식이 떨어진 것이다. 양식이 없어 굶주리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터뜨렸다(출 16:1-3). 그런 위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 공급을 시작하셨다.


하나님의 만나 공급에는 중요한 신앙적 요소가 들어 있다. 첫째, 만나의 공급이 이루어진 곳이 광야라는 점이다. 광야는 인간의 능력이 전혀 발휘될 수 없고 극소화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둘째, 만나의 공급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을 보여준다. 셋째, 만나의 공급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이며 보장이다.


예수께서도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신다고 약속하셨다(마 6:33). 이스라엘이 매일 아침 만나를 거두어들이는 것도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야만 했다. 한 사람이 하루에 한 오멜만의 만나를 거둘 수 있었고,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아야 했다(출 16:16, 19). 반면에 안식일 전날에는 안식일 몫까지 합쳐서 두 배의 만나를 거두어 들였다. 그것은 안식일에 만나를 거두러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했기 때문이다(출 16:23).


그러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 길갈에 도착했을 때 왜 만나가 그친 것일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서도 여전히 이스라엘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이제는 삶의 환경이 바뀌었다. 그들은 더 이상 광야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힘과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새로운 가능성의 땅 가나안 땅으로 들어섰다.


만나가 그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중단이 아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일할 능력이 있음을 인정해 주신 하나님의 인격적 배려였다. 그런 점에서 만나의 중단은 오히려 더 큰 축복을 향해 나아가는 전환점이 될 수 있었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축복은 ‘생산성’의 회복이다. 곧 축복은 만들어진 결과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가능성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특히 우리들의 삶과 직결된 땅과 관련된 축복은 더욱 그런 점이 부각되어 있다. 신명기에서는 토지의 소산이 많아지는 축복을 ‘여호와께서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어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는 것‘이라고 했다(신 28:11-12). 비를 내려주시는 하나님과 열심히 일하는 이스라엘이 함께 손을 잡고 축복된 결실을 거둔다는 것이다.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은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만을 받아먹는 어린아이로 존재할 수 없다. 이제는 스스로 일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결실을 창출하는 성숙한 신앙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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