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교회·언론이 바로서야 사회가 바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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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교회·언론이 바로서야 사회가 바로 된다
  • 승인 2002.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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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가 직면한 문제들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산업화의 특징이면서 병폐인 분열·개인주의·성장주의·대형화·물량주의가 여과없이 교회정신으로 자리잡으면서 세속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한국 교회가 직면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세속화의 결과로 교회 지도층(목회자)의 순도(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기독교는 문제가 많은 이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으로 들어간 교회가 세상을 정의롭게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세속적인 가치에 함몰되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습니다. 교계 지도자들부터 솔선수범하여 교회의 절대가치, 신앙의 가치, 절대성을 지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세속적 가치(정치적·사회적)들과 혼돈하거나 그런 가치를 우선시하는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어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어가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방송 사장 선임 문제를 포함, 교단장 선거 등을 살펴보세요. 세속적 가치가 교회나 성서적 가치보다 앞서는 ‘가치 전도현상’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이런 모습들이 신자들을 실망시키고 사회로부터 평가절하 받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교계 지도자들은 교회의 부정적 모습들을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불신자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한국 교회는 정치적으로 핍박을 당하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는 순수한 모습을 가졌습니다. 한국 교회 초기를 보십시오. 봉건제도의 개혁, 제국주의 등 외세의 침략에 대처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양하고 사회개혁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일제 침략 수난기에 접어들면서 신사참배 강요 등 수난을 거듭 당하면서도 신앙의 순수성을 지켰습니다.

해방 후 양적 성장을 거듭하면서 70년대에는 독재와 싸우고 소외계층을 위해 노력해왔지요. 그러나 80년대 이후 ‘가진 자의 교회’라는 비판의 소리를 듣게 됐고 ‘성장 포만감’에 사로잡히는가 하면 지도층의 감투욕으로 분열이 고착화되었습니다.
“교단장 선거에 ‘거액’을 쓴다”는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사회에 비쳐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교회는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여 대사회적인 영향력은 상실됐으며, 사회적 스캔들마다 연루되는 기독교인들이 많아 비판의 대상이 됐습니다. 목회자는 평신도의 사표가 돼야 하는데 과연 그런 목회자가 얼마나 되는지 걱정하는 평신도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목회자들이 타종교 지도자들에 비해 사회적 존경과 신뢰도가 뒤쳐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무튼 교회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소홀히 여겨서는 않될 것입니다.
물론 훌륭한 목회자가 많겠지만 스스로를 살펴야 할 분들도 있으리라 봅니다. 저도 한 때 목사가 되려고 신학을 공부한 적도 있습니다만, 사람들이 목회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고행의 지도자가 아닙니다. 교회 지도자로서 최소한 실망은 주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교회에 대한 사회의 비판의 소리에 겸허히 귀기울여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사회와 교회를 잇는 교량역할을 위해서는 기독 언론의 사명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요, 기독 언론의 특징은 무엇이라 보시는지요?

기독 언론은 그 개념 자체가 ‘교회’와 ‘언론’이라는 두 기둥에 의해 종합된 것이라 봅니다. 따라서 교회와 언론이라는 두 개의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특징을 가집니다. 언론은 속성상 ‘보편성’을 갖고 있습니다. 즉, 어떤 특정 이슈에 대해서만 다루지 않고 보편적인 모든 현상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대학 언론이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처럼 기독교와 저널리즘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게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정치·경제·사회·문화는 물론 모든 현상이 보도와 논평의 대상이 돼야 합니다. 또, 일반 언론이 사회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이나 감시견(watch dog)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기독 언론도 같은 역할을 해야 하겠지요. 교회와 신자들의 삶에 바른 길을 제시하고 시시비비를 가려 정의를 세우기 위해 이슈에 대한 분석·해설·논평·조사·평가보도 등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독 언론은 일반 언론과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뉴스 가치’를 측정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지요. 기독 언론이 뉴스 가치를 측정할 때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신자들과 교회가 가장 중요시 하는 문제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게 중요합니다. 기독 언론의 뉴스 가치 측정기준은 ‘교회’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 언론은 일반 언론의 속성과 하나님의 말씀이 어우러진 언론, 즉 하나님의 말씀을 위한, 말씀에 의한, 말씀의 언론이기에 일반 언론이 감당하기 어려운 이야기 꺼리를 충분히 발굴해서 독자에게 공급해 주어야 한다는 얘기지요.

기독교방송 사장 선임 문제를 예로 들어 볼까요? 일반인들은 물론 크리스천들도 그 내용을 자세히 모르고 있어 궁금해 합니다. 이런 문제들을 심층분석 보도할 뿐 아니라 방송국이 정상화되도록 하는 역할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기독 언론은 영상매체시대에 대응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신문 내용의 고급화, 즉 고급 정보·전문정보·특화정보를 어떻게 제작·편집할 것인가에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 있어서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수준 높은 분석을 통해 해설·평가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와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연관을 가집니까. 또 교회가 남북분단 극복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교회(Gemeinde) 자체가 커뮤니케이션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남한의 교회 개념은 기독교 이념을 함께 신봉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서 교회는 연대성이 강합니다. 이에 비해 공산주의 사회는 공산주의 ‘이념’을 같이 나누고 신봉하는 형제개념으로 ‘동무’(Kamerade)라고 부르지요. 북한 공산주의의 ‘동무’, ‘형제’는 형식적이며 강제된 연대이지만 남한의 교회는 자발적인 유대로서 강제가 없는 형제관계를 유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이 교회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공산주의 가치가 교회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겠지요. 그들에게는 공산주의가 절대가치인데 김일성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찾으면 공산주의 자체가 붕괴될 가능성이 커 교회를 세우지 않거나 억압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 교회 간의 교류나 기독 언론인들의 교류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어 하나가 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북한은 ‘시대정신’, 즉 ‘세계화’ 조류를 계속 외면할 수 만은 없을 것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지구의 ‘보편화’와 ‘표준’에 따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사순절 기간입니다.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가 시대적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반성하면서 그리스도의 삶을 다짐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데요, 사순절을 어떻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이해와 각오가 없이 생명 부활에 대한 소망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면서 교회와 크리스천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합니다. 사회로부터 냉대받는 이웃을 찾아 그들과 함께 존재할 때 그 곳에서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순절은 크리스천 스스로의 신앙을 점검하면서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기 위해 무엇인가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면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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