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 소통의 부재는 공동체를 파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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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소통의 부재는 공동체를 파괴한다
  • 승인 2008.06.17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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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부재는 공동체를 파괴한다.




일전에 C목사를 만나서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대략 2시간 정도 대화를 나눈 것 같은데 일방적으로 C목사의 말만 들었다. 비서에게 전화를 하고 약속을 잡아서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나는 C목사에게 하고픈 이야기가 있어서였지만 2시간의 시간 속에서 내가 한말은  10분도 채 되지 않았다.




분명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서 약속을 잡았고 할 말이 있었으면 어떤 이야기인지를 들어야 순서에 맞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C목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너무 오래 하는 바람에 내 이야기를 들을 여유를 가지지 못한 듯 했다.




결국 다음을 기약하면서 다른 스케쥴에 밀려 C목사와의 만남은 끝이 나고 말았다. 자신이 하고픈 모든 이야기를 다했던 C목사는 속이 시원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바쁜 시간을 미리 쪼개어 계획해서 간 시간을 헛되이 보냈다는 자죄감에 떨떠름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목회자는 쉬지 않고 말을 한다. 설교, 명령, 지시, 심지어는 부탁할 때도 명령조의 부탁을 할 때도 있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는 듯하다. 이런 목회자들을 만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상대의 마음은 어떤 것인지를 헤아리지 않고 말만하기 때문에 결국은 대화는 없어지고 결론은 자신의 주장만이 남게 된다.




그렇다면 그 결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없게 된다. 상대도 분명히 할 말이 있었을 것이고 그 마음으로 말을 하려고 했지만 상대가 듣지 않으려고 했기에 마음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이렇게 몇 번 계속되게 된다면 서로간의 의사소통은 불신을 갖게 되고 형식적인 말만을 되풀이 하게 될 것이다.




한번은 아들의 가출로 인하여서 온 마음과 영혼이 깊은 절망에 빠진 L집사와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상담을 진행해 나가면서 아들의 가출원인이 자신이 하고 싶은 바이올린을 하지 못하게 한 엄마의 억압적 반대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L집사는 그렇게 하고 싶다면 왜 진지하게 말을 하지 않았냐고 아들을 원망하는 눈치였다. 정말 아들은 엄마에게 자신의 욕구를 말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았다. 나중에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만나본 결과 아들은 정말 간절하게 자신이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은 마음을 말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는 자신의 진심어린 말을 도대체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자신이 가출을 했겠느냐고 억울해하면서 굵은 눈물을 흘렸다.




대부분의 친밀한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교우들이 함께 하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은 바로 이런 소통의 부재이다. 그리고 소통의 부재에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경청이 안 된다는 것이다. 상대는 분명히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분명하고 진실 되게 말했지만,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려는 생각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는 들을 수 없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바로 여기에 경청의 필요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전적인 정의의 경청(傾聽)은 귀를 기울여 들음을 말한다. 경청(傾聽)의 청(聽)자를 해석해 본다면 왼쪽에는 귀 이耳 자 밑에 임금 왕王 자 곧 듣는다는 것은 왕 같은 귀를 갖는다는 뜻, 여기서 왕 같은 귀라는 것은 매우 커다란 귀, 즉 들을 때 우리가 집중해서 들어야 함을 의미하고 오른쪽에는 열 십十 자 밑에 눈 목目 자를 옆으로 눕혀 놓은 글씨는 열 개의 눈 즉 듣는다는 것은 열개의 눈을 갖는 행위라는 것이 된다.




또 바로 상대를 집중해서 바라보는 것은 상대의 말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표정이나 눈빛, 태도 등의 보디랭귀지를 열 개의 눈으로 파악하면서 들으라는 뜻이고 들을 청자의 마지막 조합은 한 일一 자와 마음 심心 자가 차례로 놓여 있다. 일심, 즉 한마음. 들을 때는 상대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장례를 예비한 마리아는 예수의 말을 경청했다.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눅10:39) 마리아는 예수의 눈을, 뛰는 가슴의 심장소리를, 미소띤 얼굴을, 그의 입을,,,,그리고서야 알았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에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한 말씀의 의미를... 다른 제자들은 기억해내지 못했던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알아차린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경청은 주님의 뜻을 이해하고 주님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알게하는 나침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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